[기자수첩] '모범'이라 쓰지만 '지시'라고 읽는다
[기자수첩] '모범'이라 쓰지만 '지시'라고 읽는다
  • 김보람 기자
  • 승인 2023.12.1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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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와 은행을 위한 '모범관행'을 내놨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BNK·DGB·JB 등 8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모범관행)'을 내놓은 것이다.

금융감독당국이 제시한 모범관행에는 △사외이사 지원조직과 체계 △CEO 선임과 경영승계절차 △이사회 구성 집합적 정합성과 독립성 △이사회와 사외이사 평가체계 등과 관련한 30개 핵심원칙이 담겼다.

특히 CEO 선정에 대한 기준이 세세하게 담겼다. 

모범관행에 따르면,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을 선임할 때 현 최고경영자(CEO)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전에 승계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

CEO 후보군 관리·육성부터 선정까지 승계 계획을 사전에 문서화, 이를 이사회가 점검한다.

또 면밀한 평가와 검증, CEO 선임 과정에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후보군에 대한 평가 주체와 평가 방식을 다양화한다. 

이러한 평가 결과는 기록해 유지·관리하고 이에 관한 내용은 내규에 명시하고 공시한다. 
 
아울러 사외이사 전담 지원조직 이사회 산하 독립 설치, 전담 조직 원활한 운영을 위한 충분하고 적합한 인력 배치 등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 독립성도 확보했다.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 원장은 "모범관행은 하루아침에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면서 "은행별 특성에 맞는 적합한 지배구조 자율적 개선을 통해 내부통제 미흡, 주인 없는 금융지주 수장 연임 및 교체 우려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지주와 은행에 대한 자율적 개선을 유도한다는 방침이지만, 금융지주 셀프 연임을 막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또 CEO 거수기에 머물렀던 이사회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보인다.

다만 그는 "지주회장 임기는 적절한 시기는 따로 없다고 본다"면서 "대내외적으로 인정받고 실력 있는 회장의 연임은 누가 봐도 이상할 게 없다"라고 덧붙였다.

금융감독당국이 오래된 은행권 지배구조 관행에 혁신의 칼을 댄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다. 

감독기구로써 은행권 내부통제 미흡에 따른 모범적인 기준을 제시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감독당국이 내놓은 안은 결국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은행으로서는 '명령'과 '지시'로 읽히게 마련이다. 

그런 만큼 이번 모범 관행에 대해 '기업의 자율적 경영을 침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음을 이복현 원장은 알아야 한다.

복수의 은행권 관계자가 "지배구조 개선은 필요하지만, 당국 목표가 '모범적인 관행' 마련에 있다면, '자율적 경영'을 먼저 보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상황도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qhfka7187@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