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대통령실과 여야 정치권에서는 ‘민생’을 화두로 ‘쇄신’ 바람이 일고 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가 불러온 나비효과다.
미국의 한 기상학자가 내놓은 '나비 효과'는 나비의 날개 짓 같은 작은 움직임이 다른 지역에 엄청난 폭풍우를 몰아치게 한다는 이론이다.
정치권에서는 총선을 6개월 여 앞두고 보수통합 등 정계개편까지 야기하는 ‘나비효과’를 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먼저 국민의힘이 지난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예상보다 큰 격차로 승패가 갈리면서 윤석열정부 심판론과 여당 내 수도권 위기론이 현실화했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취임 후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 리더십 스타일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보선 참패 이후 윤 대통령은 이념 대신 민생을, 전방위적 소통을 약속하면서 쇄신의 물꼬를 트고 있다.
또 국민의힘은 당 쇄신을 이끌어 갈 혁신위의 수장에 외부 인사인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를 내정했다. 혁신위 구성을 발표하고도 위원장 인선에 난항을 거듭한 것은 혁신적 이미지와 당무 이해도를 두루 갖춘 인사를 찾는 것이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용산과 코드 맞추기가 큰 관건이었다는 후문도 들린다.
혁신위가 쇄신의 첫 단추를 잘 꿸 수 있을지를 두고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사실 보선 참패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윤 대통령이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나가자”고 선을 그으면서 김기현 지도부가 ‘2기 체제’로 자연스럽게 유지됐다는 점에서 이미 수평적이고 건강한 당정대 관계는 물 건너갔다는 시각이 나왔다. 수직적 당정대관계가 유지되는 한 혁신위가 과감한 혁신보다는 대통령 의중에 맞추는 소폭 변화만 추진할 개연성도 있다는 것이다.
혹여 혁신위가 파격적인 쇄신안을 내놓는다하더라도 용산의 생각과 결이 다르다면 김기현 지도부가 과연 혁신위에 전권을 주고 힘을 실어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는 더불어민주당 ‘친명계’ 김은경 혁신위의 한계를 이미 목도한 바 있다.
무엇보다 김기현 지도부가 앞으로 총선 공천에서 용산 입김을 얼마나 막아내며 공정한 시스템 공천을 할 수 있는가다. ‘수도권 위기론’이 현실화하면서 당 중진, 지도부, 영남권 현역,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등을 향해 수도권 험지 차출 압박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강남3구 출마설이 끊이지 않았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경우 최근 종로 출마설까지 설왕설래하고 있다.
연말까지 국민의힘 지지도가 저조하다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되거나 윤 대통령발 신당이 창당될 가능성도 있다. 윤 대통령이 총선 승리를 위해 ‘신당’이라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만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50~60%대로 지속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친윤계가 주도하는 신당 창당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 때문에 총선을 앞두고 당명을 바꿔 간판을 새로 달거나, 윤 대통령의 외곽 조직 인사들이 새로운 당을 만들어 국민의 힘과 합당하는 방식으로 세력을 키울 수도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를테면 ‘반문연대’를 기치로 기존 보수 진영뿐 아니라 제3지대까지 아우르는 ‘빅텐트’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정치사를 보면 간판을 바꿔 달고 총선에서 승리한 예는 많다. 15대 총선을 앞둔 1995년 12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민주자유당을 신한국당으로 바꿨고, 2012년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임기말 이명박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오랜 기간 보수정당의 상징색이었던 푸른색을 버리고, 과감히 빨간색을 선택해 ‘혁신’ 효과를 극대화했다. 새누리당은 그해 19대 총선에서 단독 과반을 차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17대 총선을 앞 2003년 11월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 이후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에서 152석을 휩쓸며 압승했다.
하지만 비윤계 이준석-유승민발 보수 신당설은 친윤 체제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국민의힘에게는 껄끄러운 변수다. 이준석-유승민 세력을 따라 합리적 보수층이 움직인다면 표가 분산된다. 서울 수도권에서 열세인 국민의힘으로선 보수표 분산으로 더 힘겨워질 수 있다.
그렇다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어떠할까. 이재명 대표가 단식 후유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지 35일 만인 23일 당무에 본격적으로 복귀했다. 이 대표는 첫 일성으로 '내부 통합'과 '민생 수호'를 외쳤다. 당무 복귀 후 첫 과제로 꼽혀 온 이른바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파 5인방' 징계 청원도 “더는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쐐기를 박았다. 당 전열을 조속히 단일대오로 재정비하고, 밖으로는 '대안 정당' 이미지를 부각해 사실상 총선 모드로 당 체제를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의 재판리스크는 내년 총선의 상수가 됐다. 매주 2회 이상씩 재판에 출석하는 야당 대표가 총선을 이끌고 가긴 쉽지 않다. 선거법의 경우 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2-3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어 다음 대선 때까지 재판리스크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역시 올 연말쯤 이 대표가 물러나고 ‘친명계’ 중심의 비대위 체제로 전환될 것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민주당 역시 비명계 탈당, 정의당 재창당, 진보성향 위성정당, 외곽의 진보개혁세력 재결집 등 변수에 따라 세력간 이합집산이 분주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정치권이 민생은 내팽개친 채 유불리만을 따지며 이합집산만을 답습한다면 민심은 다시 매서운 심판을 내릴 것이다.
강서구청장 보선의 진정한 ‘나비효과’는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고 변화와 쇄신 의지를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지층마저 등 돌렸던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고, 적극적인 소통으로 현장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여야가 6개월도 남지 않은 내년 4월 총선까지 강대강 대치에서 벗어나 선의의 민생 경쟁을 시작하기 바란다. “정치가 변해야 국민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