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봐도 일찍 받자”…올해 국민연금 조기 신규수급자 급증
“손해봐도 일찍 받자”…올해 국민연금 조기 신규수급자 급증
  • 이승구 기자
  • 승인 2023.10.1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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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현재 6만3855명…6개월 만에 작년 전체 수준 뛰어 넘어
수급연령, 만 62세→63세 변경 탓…생계비 충당 목적 때문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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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을 애초 받을 나이보다 1~5년 앞당겨서 일찍 받는 ‘조기노령연금’ 신규 수급자가 올해 들어 부쩍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은 일찍 받으면 그만큼 연금액이 줄어들어 손해를 보게 되는데, 올해는 연금 수급 연령이 만 62세에서 63세로 한살 뒤로 밀리면서 연금을 탈 예정이었던 1961년생들이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소득 부족에 따른 생계비를 충당하려는 목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일찍 받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1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실은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은 ‘연도별·월별 조기노령연금 현황’ 자료를 공개하면서 올해 6월 현재 조기노령연금 신규 수급자는 벌써 작년 전체 수치를 훌쩍 뛰어넘었다고 밝혔다. 

자료에 따르면 올해 신규 조기 연금 수급자는 1월 9827명, 2월 1만4613명, 3월 1만3265명, 4월 1만1034명, 5월 7735명, 6월 7381명 등이었다.

올해 6월 현재까지 6개월 만에 누적 신규 수급자는 6만3855명에 달하는데, 작년 한 해 동안 집계된 누적 신규 조기노령연금 수급자 5만9314명보다 훨씬 많다.

최근 5년간 신규 조기노령연금 수급자는 2018년 4만3544명, 2019년 5만3607명, 2020년 5만1883명, 2021년 4만7707명, 2022년 5만9314명 등이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누적 신규 조기노령연금 수급자는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어서면서 최근 5년간 평균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기노령연금은 법정 노령연금 수령 시기를 1∼5년 앞당겨서 받는 제도다.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해 노령연금을 받을 나이가 될 때까지 소득이 없거나 소득이 적어 노후 생활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노후 소득을 보장해주려는 취지로 1999년 도입됐다.

1년 일찍 받을 때마다 연 6%씩(월 0.5%씩) 연금액이 깎여 5년 당겨 받으면 최대 30% 감액된 연금액으로 평생을 받게 된다. 즉 5년 일찍 받으면 원래 받을 연금의 70%를 받고, 4년 당기면 76%, 3년 당기면 82%, 2년 당기면 88%, 1년 당기면 94%를 받는다.

이 때문에 조기 노령연금은 ‘손해 연금’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4월 기준 조기 연금을 받는 수급자의 평균 수령액은 월 65만4963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들어 이처럼 유독 조기 수령자가 급증한 데는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수급 개시 연령이 올해 만 62세에서 63세로 한 살 늦춰진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퇴직 후 연금 수급 나이는 애초 현행 법정 정년(60세)과 같게 60세로 정해졌었다. 하지만 1998년 1차 연금 개혁 때 재정안정 차원에서 2013년부터 2033년까지 60세에서 5년마다 1세씩 연장되면서 최종적으로 65세부터 받도록 변경됐다.

즉 2013∼2017년 61세, 2018∼2022년 62세, 2023∼2027년 63세, 2028∼2032년 64세, 2033년 이후 65세로 늦춰졌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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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연도로 따지면 1952년생까지만 해도 60세에 노령연금을 수령했지만, 1953∼56년생 61세, 1957∼60년생 62세, 1961∼64년생 63세, 1965∼68년생 64세, 1969년생 이후는 65세이다. 1961년생, 1965년생, 1969년생이 ‘낀 세대’가 되는 셈이다.

마침 올해 연금 수급 연령이 만 62세에서 63세로 한 살 뒤로 밀리면서 올해 만 62세가 돼 연금을 탈 예정이던 1961년생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55세 무렵에 은퇴한 이들은 ‘이제야 연금을 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뜻하지 않게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일부가 퇴직 후 소득 공백기(소득 크레바스)를 견디지 못하고 조기 연금을 신청하면서 조기 수급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수급 연령이 늦춰진 2013년과 2018년에도 조기 연금 신청자는 전년 대비 각각 5912명(7.5%), 6875명(18.7%) 늘었다.

소득 부족에 따른 생계비를 충당하려는 목적으로 손해를 무릅쓰면서까지 조기 노령연금을 신청한다는 사실은 국민연금의 자체 연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조기노령연금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22년 7월에 조기노령연금 수급자 33명을 대상으로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해보니 ‘생계비 마련’을 우선으로 꼽았다.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사업 부진, 건강 악화 등과 같은 비자발적 사유로 소득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고,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불가피하게 국민연금을 조기에 신청해서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최근에는 지난해 9월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2단계 개편으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잃을까 봐 걱정해 금액을 적게 받는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직장에 다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해 건보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소득 기준이 작년 9월부터 연 3400만원 이하에서 연 2000만원 이하로 강화되면서 공적연금을 포함한 월 소득이 167만원을 초과하면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돼 지역 건보료를 내야 한다.

이 때문에 좀 손해 보고 덜 받더라도 좀 더 빨리 국민연금을 타려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연금을 일찍 받아 수급액은 감소하지만, 연간 수령액이 2000만원이 넘지 않으면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신아일보] 이승구 기자

digitaleg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