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 <미스터 션샤인>은 1890년대 제국 열강 침략기부터 을미사변‧대한제국 군대해산‧경술국치 이후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항일무장항쟁에 나섰던 의병들을 그린 드라마다.
의병 대부분은 노비, 인력거꾼, 보부상, 도공, 포수...이름 없는 민초들이었다.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 장면은 머나먼 땅 연해주 독립운동 기지에서 무장 항쟁을 준비하는 의병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독립된 조국에서 씨유 어게인”
<미스터 션샤인> 등장인물 가운데 총을 든 의병장 ‘도공’ 황은산과 ‘포수’ 장승구는 ‘봉오동전투’ 홍범도 장군이 그대로 투영된 캐릭터다.
홍범도 장군은 머슴 출신 포수였다. 어린 시절부터 포수로 자라 범을 사냥하는 포수로 전국에 이름을 떨칠 정도로 명사수였다.
홍 장군은 동료의 가족들이 일본군에 몰살당하는 참상을 목격한 뒤 복수를 위해 홀로 일본군과 싸우기 시작하고, 후에는 그를 따르는 포수들을 규합해 ‘산포수 의병대’를 조직한다. 조선에서 총을 가진 유일한 집단은 바로 짐승을 사냥하는 포수들이었다.
“우리는 낫과 죽창을 들고 일어났던 농민군과 다르오. 하인을 데리고 다니며 행세하던 양반들의 의병과도 전혀 다르오. 가진 총알의 숫자만큼 적을 잡는 것이 바로 우리 포수들이오.” (작가 방현석의 장편소설 ‘범도’ 중에서)
임시정부에 의해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홍범도는 1920년 6월 봉오동에 집결해 일본 육군의 신화 하세가와가 양성한 월강추격대를 대파했다. 봉오동전투는 독립군 역사상 첫 승리로 기록됐다. 또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전투도 승리로 이끌었다.
홍범도 장군 아내 이옥구는 일제의 모진 고문 끝에 옥중 사망했고, 큰 아들 양순은 함경남도 정평배기 전투에서 아버지와 함께 싸우다가 전사했다. 차남 용환도 아버지와 함께 연해주로 이주하여 의병 활동을 하다 결핵으로 병사하고 말았다. 아내와 아들들을 가슴에 묻고 다시 전장터로 향했을 장군의 비장한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일본군의 토벌전으로 홍범도를 포함한 독립군 세력은 소련 영내로 탈출했다. 당시 제국주의에 탄압받던 소수민족과 연대하던 ‘적의 적’ 소련과 손잡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선택을 비판만 할 수는 없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가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해 활동했지만, 그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고 분석한다. 자유시 참변도 그와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홍 장군은 70대이던 1937년 이오시프 스탈린에 의해 이뤄진 고려인 강제 이주로 인해 카자흐스탄으로 이주되었다. 그는 입국 목적에 ‘고려독립’이라고 썼다. 이후 고려극장에서 고려인 희곡 작가 태장춘의 배려로 수위로 일하며 연금을 받아 생활했다. 고려극장은 1942년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연극 <의병들>을 무대에 올렸다. 홍 장군은 숨을 거두기 전까지 고려 동포들과 <의병들>을 보며 무장항쟁 당시를 회상했다고 한다.
순국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홍 장군은 독립된 조국에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가 결국 홍 장군의 흉상을 학교 밖으로 내보내기로 했고, 국무총리는 우리 군 잠수함에 붙여진 '홍범도함'이란 이름도 바꾸는 걸 검토해야한다며 ‘독립 영웅’ 홍 장군에게 해묵은 이념의 굴레를 씌웠다. 조국 독립을 위해 가족과 일생을 바쳐 헌신하다 광복도 보지 못하고 시베리아 땅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은 홍 장군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홍 장군을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이념 논쟁은 너무나 몰지각하고 참담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통 지지층 강화를 위한 전략이라고 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홍장군 찬밥 예우에 반대하는 보수 진영 내 목소리도 커지고 있고, 이념 논쟁을 바라보는 국민들도 등을 돌리고 있다.
4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 넘게 하락해 35.4%, 부정평가는 60%를 훌쩍 넘었다. 특히 20대와 중도층 하락 폭이 가장 컸다. 기관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공방보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등 역사·이념 논쟁이 더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독립군 영웅까지 ‘부관참시’하는 행위는 ‘이념 과잉’일 뿐이라는 국민 시각이 드러난 셈이다.
홍범도 평전의 저자 이동순 시인이 최근 발표한 '홍범도 장군의 절규'라는 시는 입소문을 타고 온라인에서 배포 캠페인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런 수모와 멸시 당하면서/ 나, 더 이상 여기 있고 싶지 않네/ 원래 묻혔던 곳으로 돌려보내주게/그토록 그리던 내 조국강토가 언제부터 이토록 왜.놈.의 땅이 되었나/나, 더 이상 견딜 수 없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권력은 짧고 역사는 길다. 윤석열 정부는 역사를 정치 이념으로 판단하려는 우를 더 이상 범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