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데이지꽃이 흔들려야 바람이 부나
[기자수첩] 데이지꽃이 흔들려야 바람이 부나
  • 이상명 기자
  • 승인 2023.08.0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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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관련 대책을 마련하는 등 국민 희생이 따라야 당연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회란 과연 건강한 것일까.  

잊을 만 하면 터지는 각종 사건사고들. 수해로 잠긴 지하방, 그 속에서 숨져간 장애인 가족. 이제는 멀쩡히 버스를 타고 가다 장마로 불어난 빗물에 의해 터널에 갇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버스 탑승 직전 통화했던 그 목소리를 못 잊겠다며 울부짖는 사람들과 어처구니없이 가슴 아프게 떠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또다시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언제까지 이 같이 선량한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들을 마냥 듣고만 있어야 할까.   

미디어에서는 오송역 주변이 물에 잠긴 모습이 연일 보도됐다. 침수된 지하차도에는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잠겨있을 텐데 또다시 지난 날의 아픈 기억들이 뇌리를 스쳤다. 

충북 청주 오송 궁평2지하차도 침수사고로 시민 14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 또한 10명이 발생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통화를 했다는 청년의 친구는 과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마지막 목소리를 잊을 수 있을까. 또다시 길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 그 청년이, 그 친구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그 곳에서 물폭탄이 쏟아질지 상상이라도 했을까 싶다. 

대형 참사가 벌어지고 또다시 민심은 흉흉해졌다. 과연 이 땅에 안전한 곳이 있을까 불안감은 증폭됐다. 최근엔 묻지마 칼부림 사건마저 벌어지며 길거리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 된 듯 하다. 

7월28일 국무조정실은 오송 침수 사고와 관련해 관련 기관들을 대상으로 벌인 감찰 결과를 공개했다. 오송 터널 주변 미호강 제방이 부실하게 관리된데다 사고 당일엔 총 5곳의 기관에서 시민들의 위험 신고 및 경고 메세지를 무시한 것이 드러났다. 

이태원 참사 당시 시민들의 신고 전화에 안일하게 대응한 관련 기관의 행태가 다시금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담당 기관 직원들의 안일한 대응, 매뉴얼조차 없는 상황 등 오송 참사는 앞선 사고들과 너무도 닮아있었다. 

감찰 결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비롯해 충북도, 청주시, 충북경찰청, 충북소방본부 등 관련 5개 기관은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주어졌음에도 늑장 대응 등으로 비극을 키웠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이 가운데 단 한 곳이라도 제대로 된 사명을 다했다면 황망한 죽음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잊을 만 하면 터지는 유사한 사건사고들. 장소와 사고 내용만 다를 뿐 황망한 죽음의 사연과 유족과 지인들의 안타까운 마음은 모두 같다. 

사고가 발생할 때에만 반짝 일어나는 국가와 관련 기관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원망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참사를 통해, 수많은 희생을 통해서만이 변화할 수 있는 세상은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하기 전, 선량한 시민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슬픈 이별을 하기 전에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데이지꽃의 꽃말이 ‘희망’이라고 한다. 이제는 흔들리고 난 후 변화를 찾기 보단 ‘희망’을 이끌어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vietnam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