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갈무리
[기고] 갈무리
  • 신아일보
  • 승인 2023.07.1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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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주 작가(수필가)
 

시아버지는 어머니가 출타한 틈을 타 몰래 다섯 그루나 되는 감나무를 베어버리셨다. 무성히 탐스러운 열매를 조건 없이 내주던 나무에 찬사를 보내며 주먹만한 감을 맛있게 먹었던지라 뜻밖의 아버지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집와서 몇 해인데···. 달콤한 감을 맛볼 수 없다는 실망감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가지마다 불 밝히던 감나무가 사라진 마당은 휑하니 머쓱한 민낯을 드러냈고 뭔가 크게 도둑맞은 느낌이 들었다. 

연초록 잎이 뾰족 솟아나면 금세 푸른 손이 되어 반기고 환하게 홍시가 달리고 겨울이면 눈꽃을 피우던 감나무에 싸인 시골집 풍경도 함께 잘려나갔다. 

아버지가 하신 일이니 따져 묻기는 어려웠지만, 무엇 때문에 그러셨는지, 자식들이 좋아하는 걸 아시면서도 왜 그랬는지는 의문스러웠다. 어머니하고는 몇 번 말씀이 오가신 모양이었다. 이유는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마당은 누가 쓸 겨.”
  
가을이면 마당에 떨어지는 감잎을 더는 쓸 수 없어 베어버리셨다는 것이다. 힘든 일도 아니니 어머니가 하시겠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는데도 아버지는 단번에 시골집 마당을 민둥하게 바꿔놓으셨다. 한두 해 감나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발아래 떨어진 무수한 감잎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아버지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감나무 절단 사건이 있은 몇 해후 아버지는 거짓말같이 마당을 쓸 수 없게 되셨다. 자식들에게 티를 내지 않았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마당을 쓰는 일도 힘에 부치셔서 그랬을까. 한차례 쓰러지시고부터 한동안 어머니만 찾다가 생을 마감하셨다. 
  
마당 쓸 일을 걱정하신 것은 자신의 부재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을까. 감만 날름 따가는 자식들보다 마당을 안고 살아갈 어머니를 위한 배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쩡한 감나무를 베면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마당가에 시커멓게 썩어들어간 감나무 밑동을 볼 때면 때때로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야들아 큰아버지가 마당에 밤나무 벤다고 저 야단이다, 영감이 미쳤나 보다.”
  
이웃해 있는 작은 집으로 큰어머니의 구원 요청이 들어왔다. 큰아버지와 여러 번 승강이를 한 모양이었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동생을 먼저 보낸 큰아버지가 동생처럼 나무를 베어버리겠다고 고집을 하시니 말이다. 산자락 밑에 있는 큰집은 산과 집의 경계를 짓는 세 그루의 밤나무가 있었다. 

가장 큰 나무는 장대를 고추 세워도 가지 끝에 장대가 닿지 않았다. 굵은 밑동은 말할 것도 없고 기운찬 가지는 용트림하듯 하늘로 뻗어 호기로운 위용은 신령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수령은 오래됐지만 달큼한 맛과 굵은 씨알로 봐서도 베어질 나무는 아니었다. 
  
밤은 제사상에도 올리고 나무의 넓고 두꺼운 그늘은 무더운 여름날 평상을 깔아놓고 한철을 나기에 더없이 좋았다. 추석 때 내려와서 큰집 밤을 털며 일 년에 한 번 밤송이에 찔리는 따끔함을 맛보는 재미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좋아하는 놀이였다. 

그럴 때마다 큰아버지는 장대를 꺼내주시며 밤 따는 요령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던가. 모두 아끼는 나무이고 베어질 이유가 없는 나무인지라 다급해진 큰어머니는 작은집 세 며느리를 큰아버지 앞으로 몰고 갔다. 

감나무를 잃었던 우리는 수십 년 된 나무의 이력을 읊어대며 공을 치하하고 칭송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심지를 돋우면서 말을 쏘아붙이셨다. 

  “나 죽으면 밤은 누가 딸 겨.”
  
이게 무슨 말인가. 죽음을 염두에 두시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놀란 우리는 하나같이 큰아버지를 뜯어말렸다. 우리가 와서 다 따갈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침이 마르게 일러드렸다. 

큰아버지는 기껏해야 추석 때 잠깐 내려와 몇 알 털어가는 우리가 미덥지 않은 눈치셨다. 그래도 애써 말리는 작은집 며느리들의 협공에 더는 말씀이 없으셨다. 우린 절대 베서는 안 된다고 말에 쐐기를 박고 또 박았다. 
  
밤나무를 무사히 구해낸 안도감은 얼마 가지 않았다. 큰아버지는 이웃으로 마실을 다니시다가 집 앞 논둑을 운동 삼아 거니시다가 어느새 집 마당 안으로 들어오시고는 나가시질 못하고 자리에 누우셨다. 눈동자는 뵐 때마다 흐려졌고 몸은 물기 마른 나뭇가지처럼 굳어져 갔다. 밤나무를 보며 큰아버지 생각을 했다. 

얼마나 자주 밤나무 곁을 서성거리셨을까.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언젠간 밑동으로 남을 준비를 밤나무와 함께 하고 계셨던 건 아니었을까. 큰아버지는 밤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몇 해 더 보시다가 올 초, 봄을 앞두고 돌아가셨다. 
  
나는 큰아버지의 부고를 듣고도 몸에 이상이 생겨 응급실을 드나드는 바람에 장례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얼만 전 시댁 가족모임이 있던 차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죄송함에 집이라도 둘러보고 싶었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여동생 집으로 가신 큰어머니도 집을 비운지 오래다. 큰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색색의 꽃망울이 한껏 터져 주인 없는 집에 보초병처럼 아름드리 피어 있었다. 다행스러운 마음에 꽃과 눈 맞춤을 하고 있었는데 큰집 옆 산자락에 도장을 찍어 놓은 듯 파릇한 동그란 터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시 할머니 무덤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얕은 경사지를 올라야 볼 수 있었던 터였는데 수상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빈집은 문 앞에 은초롱 꽃이라도 흔들어 기척을 내고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적막이 무겁게 깔려있었다. 마당 가운데 붉은 철쭉이 예전처럼 반겨주지 않았다면 기묘해진 풍경에 발길을 돌렸을지도 모른다. 

담벼락에는 큰아버지가 오래전 패 놓은 마른 장작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바람은 늘어진 빨랫줄을 한가롭게 타고 놀고 있었다. 변한 것은 없었지만 큰아버지가 안 계셔서 그랬을까,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내가 알고 있는 불길한 그림자를 뒤쫓듯 집을 둘러보았다. 그림자는 추격자에게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밤나무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밤나무가 사라져 할머니 무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마당에 밤나무가 소용없어진 것일까. 나무를 지키겠다던 큰어머니의 허락으로 베어졌다는 얘길 들었다. 어른들의 생의 갈무리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남겨진 밑동은 한 세대의 소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빈 상가에 혼자 조문 온 사람처럼 마음이 황량해졌다. 큰집을 돌아 나오는 길, 둑에는 착잡한 내 심정과 상관없이 봄기운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민들레의 몽실몽실한 솜털이 바람에 풀려 하늘거리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푸른 줄기마다 처음 핀 잔 꽃들이 부산을 떨어댔다. 

/김형주 작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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