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빨래방 패러다임의 변화
[기고] 빨래방 패러다임의 변화
  • 신아일보
  • 승인 2023.04.0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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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런드리 서경노 대표
 

네이버지도에서 서대문역을 중심으로 검색하면 약 300개 정도의 빨래방이 등장한다. 전국적으로 빨래방을 검색해본다면 그 숫자는 어마어마할 정도다.

우리 사회에 빨래방이 등장한지는 나름 꽤 됐다. 지난 1993년 7월 모 경제지 신문에 최초로 빨래방 창업이란 이름으로 광고가 게재됐고 1995년 11월에는 미국 월풀 빨래방이 외국계 프랜차이즈로 소개됐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자리잡지 못했던 지난 1995년 중반 신문에는 전국의 셀프 빨래방 숫자가 500개라고 게재되며 셀프라는 것에 열광했던 적도 있었다. 이 즈음 국내 굴지의 가전제품 제조사인 삼성과 LG는 생활필수품으로 가정용 세탁기를 판매했고 신혼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결정적으로 빨래를 집이 아닌 밖에서 하는 것에 대한 문화 자체가 없었던 시기였던 만큼 열풍이 불었을 수도 있다. 

당시 셀프 빨래방은 셀프라는 콘셉트로 고객들의 관심을 끌며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지만 그 당시의 셀프 빨래방 사업은 투자개념과 사회적 여건이 준비되지 않은 가운데 시작과 동시에 하락의 길을 걷게 됐다.

이러한 이유로 한때 셀프 빨래방을 선도하며 수 년전까지 동네 어귀에서 세탁을 해주던 월풀 빨래방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관리자가 없는 곳에서 스스로 동전을 사용해 공용으로 설치된 세탁기에서 빨래를 한다는 것이 문화로 자리잡지 못하며 자연스럽게 드라이크리닝을 하는 개인 세탁소로 전환되거나 폐업을 하게 된 경우가 적지 않다. 

폐업의 가장 큰 원인은 셀프 빨래방 사업 자체에 대해 고객과 점주분들도 이해할 수 없었던 셀프라는 업종이었기 때문이다. 90년대 당시 정기예금 금리가 9%를 넘었으며 인건비도 낮아 굳이 빨래방을 창업해 신경을 써가면서 돈을 벌 명분도 적었다. 1인 가구는 생각할 수도 없는 시기였고 맞벌이도 받아 들이기 힘든 대한민국의 가정 문화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빨래방이 500개나 생겨났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필자도 아직까지 궁금증을 갖고 있다. 새로운 문물에 대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해외에서 이용해본 경험에 대한 것이었을지 궁금하다.

그러나 지난 1995년 500개였던 빨래방은 현재 약 8000개가 넘었다. 2002년 빨래방 사업이 전문화된 세탁장비와 시스템으로 재정비되면서 성장한 빨래방은 금리와 라이프스타일의 극적인 변화로 현시점 무인사업 중 최고아이템이 된 것은 물론이고 각 지역주민의 위생과 건강에 도움까지 주는 공공의 역할까지 충실히 해 나가고 있다.

30년된 빨래방 사업의 변화 속에 녹아 있는 현재의 사업모델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문화 그리고 패러다임의 변화까지도 가져오고 있다. 셀프 세탁이 대가족시대의 끝에서 현재의 핵가족을 넘어 1인가구 시대로의 전환의 필수적인 생활편의 시설의 역할을 해 왔다면 금리가 높았던 시대에 은행이 1순위의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무인 셀프 세탁이 인건비 적게 발생하면서 자산증식의 방법으로 여겨지는 패러다임의 변화까지 이끌고 있다. 

또한 과거처럼 안전하게 오랫동안 사람들의 위생과 건강에 도움을 주는 우리동네 어귀의 공공편의시설이라는 빨래방의 패러다임에서 실크, 울, 가죽, 털 등 고급소재로 만든 의복의 세탁이 이제는 일반 세탁소에서 드라이클리닝을 위해 사용하는 석유 용제의 비현실성으로 인해 물로 세탁하는 웻클리닝의 패러다임 변화까지 오고 있다.

/ 서경노 코리아런드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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