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실손보험, 갱신 폭탄 부메랑
[기자수첩] 실손보험, 갱신 폭탄 부메랑
  • 김보람 기자
  • 승인 2021.12.2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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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실손보험 예상 적자 규모는 3조원이다. 현재 실손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는 과거 30개사에서 15개사로 반 토막 났다. 보험료도 매년 오르고 있다. 실손보험이 실패한 보험이라 불리는 이유다.

주범은 보험사·보험가입자·의료계·금융당국 모두다. 

우선 보험사는 실손보험 출시 당시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실손보험을 팔아댔다. 경쟁 심화로 지난 2003년에는 아예 자기부담금을 100% 지원하는 상품까지 출시했다.  

사실상 가입하면 진료비가 공짜인 실손보험 가입자는 의료 쇼핑에 나섰다. 

작년 메리츠화재·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 등 주요 5개 손해보험사에서 보험금을 가장 많이 타간 가입자(30대)는 월 2만9000원의 보험료는 내고, 작년 7419만7000원의 보험금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입자는 '사지 통증'을 이유로 무려 252차례 병·의원 진료를 받았다. 진료의 97% 이상은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치료와 같은 비급여진료다. 다시 말해 한 해 도수치료로 고급 외제차 한 대 값을 쓴 것이다. 

실패의 원인은 또 있다. "실손보험 있으시죠?"로 시작하는 의료계의 과잉진료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0년 주요 수술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백내장 수술 건수는 70만2621건으로 지난 2019년에 이어 1위를 차지했다. 백내장 관련 보험금은 2018년 2491억원에서 올해 3분기까지 약 7000억원이다. 이 추세라면 연말까지 93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보험업계는 백내장 질환의 유병률을 고려할 때 정상적인 수술 기준을 넘어선 과잉 진료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일부 안과 병·의원은 브로커까지 고용하며 부당한 방법으로 백내장 수술 환자를 유인했다. 심지어 백내장이 없거나, 초기인데도 백내장으로 수술을 받도록 해 보험금을 챙겼다. 보험설계사를 브로커로 활용하기도 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를 위해서는 무료 숙식을 제공했다. 

이에 실손보험 손해율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올해 3분기 말 손해보험사의 실손보험 손실액은 전년 동기(1조7838억원) 대비 1858억원 증가한 1조9696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같은 기간 위험보험료는 6조3576억원, 보험금은 8조3273억원으로 나타났다. 발생손해액을 위험보험료로 나눈 위험손해율은 131.0%다. 보험료 수입이 100원이면 보험금으로 130원이 나갔다는 뜻이다.

3900만명에 달하는 제2의 건강보험인 실손보험 실패에 금융당국도 면책을 피하기 어렵다. 표면상 직접적인 개입은 없지만 실손보험료 인상에 조율,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해율 개선을 위해 금융감독원은 차세대 보험이라며 제4세대 실손보험을 선보였다. 다만, 이마저도 흥행 실패다. 손해율을 잡겠다는 일념하에 의료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를 할증하는 상품으로 설계된 탓이다. 4세대 보험은 의료이용량이 적으면 보험료를 적게 내지만, 많은 경우 기준 보험료 대비 최대 300% 할증된다. 

혹시 모르는 경우를 위해 들어 놓는 보험인데 어느 정도의 보험료 할인이 소비자 눈에 찰 리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낸 보험금 언제 한번 제대로 타 먹어보자'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일단 팔자' 마케팅을 펼쳤던 보험업계와 일부 병·의원 및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선보인 금융당국으로 인해 실손보험은 '갱신 폭탄'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qhfka7187@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