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
[기자수첩]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1.02.0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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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에 따르면 지난해 미래에셋대우·KB·NH투자·한국투자·키움·유안타증권 등 국내 주요 증권사 6곳에서 개설한 신규계좌 723만개 중 절반이 넘는 392만개가 20·30대 명의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불신, 정부에 대한 불신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해 '합법적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게 중론이다. 더구나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등은 "20·30대는 보유 자산의 100%를 모두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며 '내다볼 수 없는 위험한 기회'를 잡길 독촉하고 있다.

다들 주식에 빠졌을 때 필자는 넷플릭스에 몰두했는데, '예수는 역사다'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예일대학교 법학 석사를 졸업하고, 미국의 10대 신문 중 하나인 시카고 트리뷴에서 법률담당 기자로 활동했던 리 스트로벨 목사의 이야기를 담은 '사실' 바탕의 영화였다. 아내가 신앙의 길로 들어서자 당시 기자이자 무신론자였던 스트로벨 목사는 예수의 부활과 개신교를 부정하기 위해 전방위로 나서는데, 결국 증거를 따라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필자는 명확한 '사실'만 대중에게 전해야 하는 기자다. 이성적 근거를 바탕으로 보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반면 필자는 비이성적이고 직관적인 형태의 '믿음'을 가진 개신교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지금의 내 모습과 내 글은 위선이 아닐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나아가 종교에 대해선 지금도 가끔씩 의문을 떠올릴 때가 있는데, 한참 기호학에 빠졌을 땐 동일한 신을 두고 이스라엘에선 '야훼', 그리스·로마와 일부 소아시아에선 '제우스', 동아시아에선 '옥황상제'라고 불렀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영화는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는 성경 구절을 부각하는데, 반대로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에는 '진실을 존중하여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며,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한다'고 써 있다. 서로 길이 다른 듯 보이지만, 두 가지를 실천으로 옮기면서 느낀 공통점은 필자가 내세운 가설이 반증으로 무너질 땐 진실성을 확증 받으면서, '믿음'이 더욱 공고해졌다는 것을 실감한다는 것이다.

2016년 정치부에서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취재했고, 2017년과 2018년에는 서울 서초동에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국정농단 핵심 인물의 검찰 조사와 재판을 참관했다. 다시 정치부로 돌아가 2020년까지 21대 총선을 지켜보면서 나름 '재선' 기자라고 혼자 위로할 수 있을 정도의 경력을 쌓았는데, 이번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과 맞물려 3주 전부터 청와대 출입기자로 입성했다.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면서 나름대로의 합리적 의심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갔다.

하지만 청와대에 들어온 뒤로는 취재에 한계를 느끼면서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겪은 어느 기관보다 사실 확인이 힘들다는 점에서다. 하다못해 정상 간 대화 내용은 청와대가 녹취나 현장 영상을 공개하지 않는 이상 관계자의 증언이나 소회가 없으면 확인할 길이 없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일정과 대화 내용을 알려주는 이가 정부 인사라는 점에서 주관이 들어가 사실을 와전하거나 편향적으로 해석하진 않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소한 부분에서까지도 의구심을 유발하는데, 일례로 청와대가 알린 최근까지의 문재인 대통령과 다른 국가 정상 간 대화 내용을 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6일 문 대통령에게 "감사를 드린다, 만나 뵙길 기대한다" 등의 말을 했고, 이에 앞서 같은 달 22일에는 까를로스 알바라도 께사다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문 대통령께서 방문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등의 표현을 썼다. 외국인이 정말 한국 특유의 이같은 존칭어를 썼는지 여부는 그 나라 정상의 심중을 통역사가 정확히 간과했거나, 청와대가 녹취를 공개하지 않는 이상 알 길이 없다.

청와대는 지난달 27일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문 대통령 특별연설을 들은 일부 외국인 참석자의 소회를 전하기도 했는데, "대통령 말씀, 대통령께서, 대통령이 갖고 계시는" 등의 극존칭을 썼다고 한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 때 트라우마(후유증)가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사실을 통해서만 진실로 갈 수 있다" 약 2000년 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 신앙을 공인했고, 150년 전 수많은 선교사의 순교와 비례해 대한민국에선 수많은 사람이 개종했다. 지금은 800만명의 기독교인이 전국에 있다. 심지어 작은 어머니가 교회에 간다는 이유로 목사 멱살을 잡고 욕했던 필자의 작은 아버지는 현재 그 교회에서 장로 직분까지 갖고 있는데, 이들의 '회귀'는 결국 이성적으론 이해가 불가능한 '믿음'을 실제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개종한 사람은 수없이 봤고, 처음부터 문재인 정부를 맹신한 극성 지지층도 필자 주변에 여럿 있다. 정부를 전폭적으로 믿다가 점점 의심을 품고 다른 길로 빠지기 시작한 이신론자도 봤는데, 문재인 정부를 불신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정부를 신뢰하기로 했다는 사람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8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2월 1주차 주간 여론조사 집계 결과(YTN 의뢰, 1~5일 전국 성인 2519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 응답률 4.2%, 자세한 내용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보면 문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39.3%로 나타났다. 전주 대비 3.2%p 떨어졌는데, 부정평가는 3.5%p 오른 56.5%를 찍었다. 그나마 남았던 사람에 대한 얄팍한 믿음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