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런저런] 철인왕후, 지하에서 통곡하다
[e-런저런] 철인왕후, 지하에서 통곡하다
  • 신아일보
  • 승인 2020.12.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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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조선 후기 제25대 철종 대왕이요, 나는 철인왕후다”

최근 인기와 논란을 함께 일으키고 있는 한 드라마의 제목이 나의 왕비명과 동일하기에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내용이 전개되겠거니 생각했던 내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다.

내 남편은 주색잡기에 빠진 왕으로 그려졌고 나는 우물에 빠져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웃전인 순원왕후와 신정왕후 또한 극도로 희화화해 웃음거리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안동 김씨 세도가 집안에서 태어난 여식인 나는 단지 가문의 정략적인 판단으로 남편 철종과 결혼했다지만 몰락한 왕족으로 강화도에서 숨죽여 살던 남편이 왕위에 오른 후 그를 보필하며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다갔다.

당시의 세도가 안동 김씨의 자손이라지만 남편 철종의 뜻을 거슬러 친정 세력의 편을 들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내명부를 다스리며 웃전에게 효를 행하고 남편 철종을 보필했을 뿐이다.

그런 우리 부부를 드라마로 제작한다 하여 내심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강화도에서 농사나 짓던 무지렁이, 무식쟁이라는 소문과 달리 내 남편 철종은 나름 외척 세력을 견제하며 조선 왕가를 지키려 묵묵히 애썼던 안쓰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왕 수업을 받고 왕위에 오른 다른 왕들과 달리 사가에서 농사꾼으로 살며 심도 있는 수업을 받지는 못했으나 나름 왕손으로서 기본적인 교육도 받았고 궁궐에 들어온 후에는 왕으로서의 공부에 게을리하지도 않았다.

그런 남편 철종을 위해 나 철인왕후는 그림자처럼 살아갔다. 세도가 안동 김씨 가문의 딸로 철종을 압박하지도 않았고, 정치에 관여하지도 않았다. 힘 있는 세력들이 철종을 위협하고 압박할 때는 한숨으로 남편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남편 철종이 제 뜻을 제대로 펴 보지도 못하고 승하했을 때는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던 사실을 후대는 알고 있는 걸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숨어 살던 몰락한 왕족의 후손인 남편이 세도가의 먹잇감처럼 허수아비 왕으로 등극하고, 그런 남편을 또 압박하기 위해 세도가의 여식이던 나를 왕비에 앉혔지만 우리 부부는 금슬만은 좋았다. 서로를 반목하지도 않았다.

그런 우리에게 후대의 평가는 왜 이리도 천박한 걸까.

“철인왕후라는 사람이 우물에 빠졌었어?”

한 초등학생이 물었다. 아이의 부모는 그저 드라마일 뿐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이 땅의 수많은 어린아이들은 교과서보다 미디어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세대다.

작가적 상상력이나 드라마적 판타지를 이해하려 노력해 봐도 ‘철인왕후’라는 실존 왕비명을 사용했다면 역사왜곡은 저지르지 말았어야 했다. 더욱이 나라를 대표했던 왕가를 폄하하는 발언 또한 삼가야 옳다.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로 표현한 것은 두고두고 논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고양시 서삼릉 ‘예릉’에서 남편 철종과 잠들어 있던 철인왕후는 그만 지하에서 통곡하고 말았다.

/이상명 스마트미디어부 기자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