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런저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런저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신아일보
  • 승인 2020.11.1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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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잠자리에 누워 케이블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큰 기대는 없었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끝까지 보느라 밤잠을 설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게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그런 영화다.

물론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나 뉴스 등 매체를 통해 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당시 기억으로는 고령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듯싶다. 어쩌면 밤잠을 설쳐가며 끝까지 영화를 본 이유가 제목과 내용의 괴리에 기인했을지도 모른다.

일단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미국 텍사스와 멕시코 국경이 접한 어느 사막에서 마약 거래가 진행되는 중 총격전이 발생해 마약상들이 모두 죽은 가운데 한 남자가 마약거래 현장에 남겨진 200만 달러를 손에 쥐게 된다. 그리고 200만 달러의 원래 주인이 돈을 찾기 위해 고용한 청부살인업자가 그 남자를 쫓는 과정이 영화 내내 긴박하게 묘사된다.

결론적으로는 200만 달러를 가지고 달아난 남자도, 그 남자를 쫓는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서슴지 않고 제거했던 청부살인업자도 본연의 목적을 이루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왜 영화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일까.

이 영화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오랜 시간 지혜를 쌓아 현명한 생각을 소유하게 된 '노인'이 예측한대로 흘러가는 사회를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영화는 우리 사회가 우연을 통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고, 선한 의도로 행한 일이 곧 악몽이 돼서 찾아오는 등 '우연'과 '선택'이 지배하는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완전히 안전할 수 없다는 점을 그려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영화에서 '사이코패스' 청부살인업자가 제거대상의 생사를 결정하는 수단으로 '동전 던지기'를 선택토록 하는 장면을 보면 제목이 시사하는 바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여기서 '동전 던지기'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의미한다.

영화 결말을 보면 200만 달러를 가져간 남자의 부인은 청부살인업자의 '동전 던지기' 제안을 거부하지만 결국 살해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만약 부인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운명을 바꿀 수 있었을까. 운명에 저항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 여운으로 남는 영화다.

/한성원 스마트미디어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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