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말살당한 곳에는 역사가 없다. 역사가 없는 곳에는 인간의 존재가 없다. 반세기가 넘도록 기억을 말살당한 4.3은 한국 역사속에 존재하지도 않았다.(중략) 입밖에 내놓지 못하는 일. 알고서도 모르는 일."
재일교포이자 원로 소설가인 김석범 씨(91)가 약 15년여 전에 ‘기억의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의 일부분이다.
제주도민을 제외하고 4.3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아니 제주도민 가운데서도 4·3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관점에 따라 제각각이다.
당시 미군정과 서북청년회의 횡포 등에 반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항쟁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당시 시국과 무관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탄압을 당한 이들은 4.3사건은 학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지난 2003년에 발간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미점령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라고 규정돼 있다. 보고서는 84.4%가 토벌대, 12.3%가 무장대, 3.3%는 기타 원인으로 희생됐다고 밝히고 있다.
10명중 1명은 군인·경찰·서북청년단 등에 대적하는 무장대에 의해 희생된 것을 알 수 있다.
제주4.3사건은 아직 제대로 된 이름이 없다. 정명되기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학살이냐 항쟁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를 연구하고 정확한 진상규명을 통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널리 알리는게 우선일지도 모른다.
지난 1989년 제주시민회관에서 열린 첫 추모제 행사를 시작으로 2000년에는 4.3 특별법이 제정·공포됐다.
2014년에는 故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유족과 도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국가를 대표해 공식 사죄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때 4월3일을 국가 지정 추념일로 지정되기도 했다.
올해에는 제주 4.3사건 70주년을 맞는다.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제주4.3사건을 알리는 운동이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세계로 확산된다.
일본에서는 다음달 21일부터 이틀간 제주도4·3사건 70주년 추도모임인 ‘강연과 콘서트의 밤’ 행사와 제70주년 재일본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도쿄 호쿠토피아 사쿠라홀과 오사카 히가시나리구민센터홀에서 각각 열린다.
제주 4.3사건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현재까지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있는 상황이다. 나아가 가해자가 누구인지조차 명확히 얘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도 뒤따르지 않고 있다.
우리들은 4.3 희생자들의 원혼과 유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반면교사로 삼고 올바른 역사를 만드는 밑걸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계절의 봄은 해마다 찾아오지만, 역사의 봄은 진실과 올바른 의미를 이해하려는 후대의 노력이 가져 올 것이다.
[신아일보] 이동희 기자 ldh1220@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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