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발 뺀 조희연… 외고·자사고 문제 정부로
슬그머니 발 뺀 조희연… 외고·자사고 문제 정부로
  • 이현민 기자
  • 승인 2017.06.2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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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외고·자사고 등 5개교 모두 재지정
"일반고 전환 법 개정 필요… 일몰제적 전환이 옳아"
결국 정부 결단에 초점… 단계적 폐지 가능성 커져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국제중·외고·자사고 재평과 결과 발표 및 중·고 체제개편 제안 기자회견문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외고 등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이 2년 전 운영성과 평가에서 기준점수에 미달했던 탈락위기에 있던 자사고와 외고 4곳에 대해 모두 재지정을 승인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7일 경문고·세화여고·장훈고·서울외고·영훈국제중 등 자사고 3곳과 외고 1곳, 국제중 1곳 모두를 재승인했다.

이들 학교들은 재평가 결과 모두 지정취소 기준 점수 60점보다 높은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고 교육청은 밝혔다.

이번 운영성과 평가는 재정 운영, 공교육 정상화 노력, 학교구성원 만족도 등 12개 부문에 대해 이뤄졌다.

100점 만점에 60점 미만이면 교육청이 지정 취소를 결정할 수 있고, 교육부가 동의하면 외고·자사고는 일반고로 전환해야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번 재평가는 2015년 당시의 평가지표와 평가방식을 동일하게 적용하여 평가의 신뢰도와 타당성 등 행정의 합리성을 확보하는데 유의했다"며 "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초·중등교육정상화를 위한 고교체제 개편'과는 별개의 사안으로 진행됐다"고 재평가 결과를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이처럼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은 해당 학교와 학생, 학부모 등 이해당사자들의 극심한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서울 자사고교장연합회는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자사고들은 국가정책을 믿고 수백억 원의 인프라 투자를 했다"며 "지정 취소가 되면 그간 노력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소송 불사 방침을 밝히며 압박했다.

학부모들은 "자사고를 폐지하면 강남 8학군 부활과 하향평준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기자회견, 거리집회, 행진 등을 통해 잇따라 입장을 표명했다.

▲ 서울시교육청의 자율형사립고 폐지 정책에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광장에서 열린 자사고 폐지 반대 집회를 마치고 서울시 교육청을 향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또한 새 정부의 교육정책이 크게 변화할 것에 대비해 시 교육청이 교육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고육책을 택한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은 시·도별로 추진할 때의 혼란상 등을 고려해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고교체제 단순화 실행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조 교육감은 이와 관련 시도교육청의 영역에서는 자사고·외고 폐지는 힘들다"며 "사회부총리가 임명되는 대로 고교체제 단순화 공약 실현을 위해 법개정을 통한 일괄 전환 등의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외고와 자사고를 즉각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법, 일몰제 방식으로 5년마다 도래하는 평가 시기에 맞춰 연차적으로 전환하는 방법도 있다"며 "새 정부는 이 같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해 주도적으로 추진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외에도 자사고, 외고, 일반고의 입시를 동시에 진행하는 입시전형의 개혁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새 정부 들어 재지정 여부를 놓고 처음 나온 서울시교육청의 이번 판단은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크다.

현재 서울에는 전국 자사고 46곳 중 절반인 23곳, 외고는 31곳 중 6곳이 있다.

▲ 서울시내 한 외고 모습.
다른 진보성향 교육감들 역시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발표와 같이 교육부에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외고·자사고 폐지 정책을 에둘러 추진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럴 경우 일괄 폐지보다는 단계적 폐지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법을 바꿨다 하더라도 다음 재지정 평가까지 운영 기간이 남은 외고·자사고를 한꺼번에 일반고로 전환할 방법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조 교육감도 이날 "시행령 개정을 통한 외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법 중에서는 일몰제적 전환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외고·자사고 폐지는 고교 성취평가제·고교학점제·대학수학능력시험 절대평가 전환 등의 정책들과 맞물려 있는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경우 다른 교육정책들까지 혼란이 발생할 수 있어 속도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29일 인사청문회를 앞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해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에 대해서는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국가교육회의에서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조 교육감 등 진보 교육감들이 내놓은 자사고 외고의 일반고 전환 문제는 일단 국가교육회의 등에서 본격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신아일보] 이현민 기자 hmlee@shinailbo.co.kr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