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에 '적신호'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에 '적신호'
  • 강태현 기자
  • 승인 2017.03.0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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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계획…금융위 반대하자 청와대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과 관련한 삼성 측의 로비 의혹을 제기하면서, 삼성생명의 지주사 전환에 적신호가 켜졌다.

삼성 측이 금융위원회에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방안을 최초로 문의한 것은 지난해 1월 말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가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 34.4%를 인수해 최대주주로 올라서기 직전이다.

시장에선 앞다퉈 삼성생명이 금융 계열사들을 거느리는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측된 사안이었는데도 삼성이 만든 금융지주 전환 방안을 살펴본 금융위는 깜짝 놀랐다.

일단 금융당국의 승인이 필요한 쟁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은 금융위가 삼성 측에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승인해줘야 가능한 금융지주 전환 방안을 짜놓고 있었다.

논란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삼성생명을 투자부문(지주회사)과 사업부문으로 나눌 때 자산·부채를 분할하는 방식이다. 금융위 검토 결과 삼성의 방안에는 업계 1위인 삼성생명 보험계약자들이 챙겨야 할 몫이 제대로 반영돼있지 않았다.

계약자들이 낸 보험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에 쓰인다는 비판이 우려됐다.

회사 분할로 삼성생명 사업회사의 자본이 감소하면 지급여력비율(RBC)도 떨어질 수 있었다.

RBC는 보험사 건전성을 측정하는 주요 지표로, 높을수록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능력이 좋다는 의미다. 보험업계는 새 국제회계제도인 IFRS17과 신(新) RBC 제도 도입을 앞두고 RBC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두 번째는 삼성전자 지분 매각과 유배당 계약자에 대한 매각 차익 배당 문제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로 전환하려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7.55%를 2대 주주인 삼성물산 지분(4.25%)보다 낮춰야 한다.

삼성전자 지분을 최소 3.3% 이상 팔아야 한다는 뜻인데, 이 가치가 10조원이 넘는다.

삼성전자 지분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처분할지도 문제인 데다 삼성생명은 법에 따라 삼성전자 매각 차익을 유배당 보험상품 계약자에게 배당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보험사들이 계약자에게 보험금 이외에 발생하는 유배당 상품을 주로 판매한 결과다. 2015년 기준으로 삼성생명의 유배당 상품 계약 건수는 219만건에 달한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보통주 취득 원가는 주당 5만3564억원, 현재 주가는 201만2000원(6일 종가 기준)이다. 주가가 37배 뛰었으니 엄청난 매각 차익이 발생한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7년에 걸쳐 서서히 매각하면 한꺼번에 파는 것보다 유배당보험 계약자에 대한 배당 규모를 최대 2조원까지 줄일 수 있다. 보험계약자는 손해를, 삼성은 이익을 보는 구조다.

삼성 측이 금융위에 금융지주사 전환조건 충족을 위한 유예기간을 허용 가능한 최대 기간인 7년으로 해달라고 요청한 이유다.

삼성생명 지주회사 전환 방안을 검토한 금융위는 보험계약자의 권익 등을 고려해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맞춰야 지주사 전환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삼성 측에 전달했다.

삼성이 만든 방안대로라면 이재용 부회장이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의결권을 2배 정도 높일 수 있었지만, 금융위가 제시한 조건에 맞춰 금융지주사 전환을 하면 삼성이 비용을 훨씬 많이 투입해야 했다.

삼성 측은 금융위의 반대에 물러서지 않고 이 사안을 청와대로 들고갔다는 게 특검의 수사 결과다.

금융위가 금융지주 전환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지난해 2월 14일 삼성 측에 전달했고, 다음 날인 2월 15일 이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에서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고 특검은 파악했다.

보험회사를 분할하는 것은 일반회사 분할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비금융회사인 삼성전자나 삼성물산을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주주총회 의결만 거치면 되지만, 삼성생명을 분할하려면 보험업법에 따라 주주총회 의결 외에도 단계단계마다 금융당국의 승인과 재량권이 개입된다. 그만큼 부정 청탁의 여지가 컸다는 것이다.

금융위가 소신을 굽히지 않자 삼성은 야당의 승리로 끝난 지난해 4·19 총선을 앞두고 금융위에 금융지주사 전환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이 부정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는 사안 중 △삼성바이오로직스 특혜 상장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삼성SDI 지분매각 축소는 상대적으로 지엽적이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이 핵심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에 필수적이어서다.

특검 수사 이후 삼성은 금융지주사 전환을 당초 계획대로 추진하기 어려워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삼성 측이 자신들에 유리한 방안을 밀어붙였다는 사실이 알려진 만큼 추진 가능성이 '제로(0)'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결국 지주사 전환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삼성은 삼성생명 인적분할과 같은 무리한 방안을 쓰지 말고, 이재용 부회장의 최종 지주사 보유 지분이 낮아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아일보] 강태현 기자 thkan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