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내무부는 19일(현지시간) 오후 안드레이 카를로프(62) 러시아 대사가 앙카라의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터키인의 눈으로 본 러시아’ 개막식에 참가해 축사를 하던 중 한 남성이 뒤에서 쏜 총을 맞고 쓰러졌다고 밝혔다.
총을 맞은 카를로프 대사는 즉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터키관영 아나돌루통신에 따르면 저격범은 이날 경찰로 위장해 전시회장에 잠입한 후 카를로프 대사의 뒤로 접근해 대사를 향해 8발 이상의 총을 쐈으며 현장에서 사살됐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당시 저격범은 카를로프 대사가 쓰러지자 왼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킨 채 고성으로 한동안 연설을 했다.
그는 “알레포를 잊지 말라”, “(시리아와 알레포를) 압제한 이들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신은 위대하다” 등을 외쳤다.
터키 내무부는 러시아 대사를 쏜 저격범은 메블뤼트 메르트 알튼타시(22)로 터키 경찰관이었다고 전했다.
일부 언론은 알튼타시가 터키 쿠데타 연계 혐의로 최근 해고됐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은 이번 저격사건은 시리아 정권이 알레포에서 4년 반 만에 승리를 거두고 수니파 반군 철수가 진행되는 중에 발생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시리아내전에 개입해 시아파 민병대 등과 함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원, 알레포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반대로 터키는 줄곧 시리아 반군을 지원했다.
알튼타시가 사살되기 전 연설했던 내용을 비춰 보면 러시아의 시리아 군사작전에 보복할 의도로 러시아대사를 저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러시아대사가 터키경찰관의 ‘보복성’ 테러행위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이 난다면 이번 저격 사건이 양국 관계와 시리아내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현지 언론은 내다보고 있다.
현재 러시아와 터키는 테러행위로 규정하며 양국 관계가 험로에 빠져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마리야 자하로바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오늘은 러시아 외교의 비극적인 날이다.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공개 행사에서 러시아 대사가 총격을 받아 숨졌다”고 카를로프 대사 사망 사실을 확인하면서 “테러리즘은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그것과 단호히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터키 역시 이번 사건을 테러로 선언하면서, 러시아와 관계 정상화에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설명했다고 이브라힘 칼른 터키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다.
터키 외교부는 또 성명을 내고 “이번 공격이 양국 관계에 그늘을 드리우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쉴레이만 소일루 터키 내무장관은 “이번 총격은 터키와 러시아 관계에 테러를 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숨진 카를로프 대사는 40년을 외교가에서 일한 정통 외무관료다. 그는 한국어에 능해 2000년대 초·중반 북한 주재 대사를 지내는 등 한반도와도 인연이 있다.
[신아일보] 이은지 기자 ejlee@shinailb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