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웃집 아줌마 현실 속에도 있었으면
이런 이웃집 아줌마 현실 속에도 있었으면
  • 온라인뉴스팀
  • 승인 2015.12.0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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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의 진정한 판타지 라미란
골목 이웃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큰손이자 큰언니
 

이런 이웃집 아줌마는 없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판타지임에 틀림없다.

뭐든지 퍼주고 성격도 시원시원하다. 잘난 척도 안하고 유머도 넘친다.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마력과 매력이 쌍문동 골목길 이웃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

축구 잘하고 잘생긴 부잣집 수재와 강남 아파트 한 채 살 돈을 척척 상금으로 타오는 천재 바둑기사가 동시에 전교 999등의 왈가닥 성덕선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 판타지가 아니다. 그건 그냥 만화다. 심지어 많이 보아온 이야기.

그냥 만화에 머물렀다면 tvN ‘응답하라 1988’는 지금과 같은 폭넓은 시청층을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10~50대를 사로잡는 ‘응팔’ 신드롬의 중심에는 우리가 그리워하는 사라진 가치들이 놓여 있고 그 중심에는 라미란 여사가 자리한다.

가족, 이웃, 인정, 상부상조, 형님먼저 아우먼저 등의 가치가 실종된 현대사회에서 ‘응답하라 1988’은 그러한 가치를 복원하며 남녀노소에게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한때는 존재했던 게 분명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러한 가치는 그리움이라는 감정과 합체돼 닿을 듯 말듯한 판타지로 구현되고 라미란 여사가 그 판타지의 선봉에 서 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하지만 곳간이 터져나가도 탐욕스럽게 굴거나 주변에 10원 한 장 안 쓰는 자린고비들이 있기 마련이다.

‘응팔’의 김성균-라미란 부부는 3년 전만 해도 단칸방에 네 식구가 붙어살면서 연탄 살 돈이 없어 장작을 때던 신세다. 도배, 장판 등의 일을 하면서 어렵게 살아가던 이들 부부는 며칠씩 굶기도 했다.

 

그러다 3년 전 도대체 얼마짜리 복권에 당첨됐는지는 모르겠지만 1등에 당첨된 이들은 마당있는 양옥집으로 이사하고 1988년 현재 연탄 1000장씩을 들여놓고 살며 온갖 전자기기와 비싼 식료품을 늘어놓고 살아간다.

그렇다 해도 타워팰리스도 아니고 도봉구 쌍문동이다. 남편 김성균은 지금도 귤을 사면 식구 수에 맞게 네댓 개밖에 못 사온다. 돈이 아깝고 돈을 쓸 줄 모른다.

그런데 라미란은 다르다. 사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그는 손이 큰 인심 좋은 이웃이 됐다. 자신의 집 반지하에 세들어 사는 일화네 가족과 골목 맞은 편 남편 잃고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근근이 살아가는 선영네 가족을 품 안에 보듬는다.

귀한 전복죽을 한솥 넉넉히 쑤어서 가가호호 퍼주고 늘 돈에 쪼들리는 일화와 선영에게 수시로 돈을 빌려주면서도 갚으라는 소리도 안 한다.

집에서 동네 사람들 식사대접도 잘하고 반상회 끝나고는 짜장면을 쫙 돌린다. 또 방문 화장품 판매원이 오면 일화와 선영을 불러 자기 돈으로 마사지를 받게해주고 심지어는 동네 애들 모아서 과외도 함께 받게 해준다.

그렇다고 젠체하거나 상대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불우이웃 돕기도 아니다. 배곯던 시절을 잊지 않으며 없이 사는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면서 지금은 살만큼 됐으니 적당히 쓰면서 살아보자는 그의 모습은 멋지고 쿨하다.

피붙이도 아닌 이웃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늘 베푸는 큰언니 라미란은 일화와 선영에게 하늘이 보내준 요정 같은 존재이자 지금은 사라진 골목 공동체의 구심점이다.

‘핏줄이 도둑’인 경우도 흔한데 피 한방울 안 섞인 이웃이 늘 큰 나무처럼 버티고 서서 도와주고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주며 지척에서 매일매일의 희로애락을 함께해주는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명절이나 돼야 얼굴 한번 보는 사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1980년대가, 1988년이 화사하기만 했던 게 아니었다는 지적과 함께 ‘응팔’ 신드롬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제기되기도 한다.

어차피 판타지다. 드라마의 눈에 씌인 안경은 졸부 라미란의 시력도, 당시 민정당 청사를 점령하고 데모하던 대학 2년생 보라의 시력에 맞춘 것도 아니다. 80년대 귀여움 받고 용돈 받으며 살던 중고생 철부지들의 시력과 눈높이에 맞춘 이 안경은 그래서 시야가 넓지도 못해 좁은 골목을 벗어나지도 못한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이 그리는 푸근한 판타지, 라미란 여사가 전하는 이 판타지는 마음을 데우고 또 데우며 잠시라도 착한 마음을 품게 만든다.

[신아일보] 온라인뉴스팀 web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