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도 TV 안 보는 시대'… 방송사, 너도나도 웹콘텐츠
'PD도 TV 안 보는 시대'… 방송사, 너도나도 웹콘텐츠
  • 온라인뉴스팀
  • 승인 2015.11.1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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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춘추전국시대… 디지털 콘텐츠의 무서운 용틀임
신서유기·마리텔 같은 흥행작 등장… ‘롱테일’ 통할까
 

방송 시장이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플랫폼 다양화와 그로 인한 시청 패턴 변화로 ‘방송’이라는 개념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스타 방송인 강호동이 tvN 디지털 콘텐츠 ‘신(新)서유기’ 촬영을 시작하면서 당혹감에 내뱉은 말이다.

CJ E&M 계열의 케이블채널 tvN은 지난 9월 ‘신서유기’를 TV가 아닌 온라인(네이버TV캐스트)으로만 공개하는 도전을 감행했다. 2개월이 지난 9일 현재 ‘신서유기’ 전체 조회 수는 5300만에 육박한다. 단순히 따지면 국민 1명당 한 번씩은 이 콘텐츠를 접한 셈이다.

디지털 콘텐츠가 무서운 용틀임을 시작하면서 방송 생태계가 급변하고 있다.

TV 프로그램의 2차 유통 경로로 인식됐던 온라인이 콘텐츠 기획·제작·유통의 본무대로 떠오르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곳은 스타 방송인조차 “뭘 어떻게 하는 거냐”라고 물을 정도로 신세계다.

 

◇ 지상파·케이블 너도나도 디지털 콘텐츠 노리기

전통적인 방송 사업자들은 지상파, 케이블 할 것 없이 디지털 콘텐츠에 손을 뻗고 있다.

‘신서유기’는 tvN 디지털 콘텐츠 브랜드 ‘tvNgo’의 첫 작품이다. ‘신서유기’ 나영석 PD를 비롯해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인력들이 온라인 예능을 만든다.

지상파들은 웹예능보다는 상대적으로 기존 방송과 비슷한 포맷의 웹드라마로 연착륙을 시도 중이다.

중국 자본이 앞다퉈 투자하고, 일본 톱스타(우에노 주리)까지 출연하고 미국(한류 사이트 ‘드라마피버’)에서도 본다는 웹드라마는 가장 왕성하게 번식 중인 장르다.

KBS는 ‘미싱코리아’를 비롯해 웹드라마 4편을 올겨울 집중 편성했고 MBC는 제작 중인 ‘퐁당퐁당 러브’를 웹에서 먼저 공개할 계획이다. SBS는 계열사 SBS플러스·MTV 등을 통해 웹드라마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공룡’ 방송사들의 분주한 움직임은 “기존 콘텐츠 산업은 분명한 장르적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나영석 PD·문화창조융합센터 9월15일 강연)이다.

스마트폰은 콘텐츠 소비 패턴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사람들은 이제 어지간히 재미있지 않고서는 70분 드라마와 100분 예능을 견디려 하지 않는다. 모바일 플랫폼에 최적화한, 짧고 부담없는 콘텐츠가 각광받는 세상이다.

KBS 교양국의 한 PD는 “방송을 만드는 나조차도 TV를 안 본다”면서 “TV가 콘텐츠를 보는 핵심 플랫폼으로서의 지위를 우리 예상보다도 더 일찍 상실할 것 같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 “인기 인터넷 방송 잡아라”…방송사, MCN으로 영역 확장

방송 사업자들이 1인 인터넷 방송의 기획사 격인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 높은 동영상과 ‘대도서관’, ‘김이브’, ‘양띵’ 같은 BJ(인터넷 방송 진행자) 스타를 선점하려는 차원에서다.

CJ E&M이 선두 주자다. 수년간 1인 방송계 스타들을 착실히 관리해왔던 CJ E&M은 올해 5월 ‘다이아TV’라는 새 MCN 브랜드를 선보였다.

KBS는 1인 채널을 지원하는 MCN ‘예띠스튜디오’를 지난 8월 시작했고 MBC 자회사인 MBC플러스도 현직 PD들이 참여하는 프로덕션 형태의 MCN ‘코코넛’을 운영 중이다.

방송 사업자들에게 MCN이 매력적인 이유는 많다. 스튜디오 공간과 고화질 카메라 등 최소 인프라만으로도 제작이 가능하고 제작 기간도 짧기 때문이다.

MBC플러스 에브리원센터의 이강섭 PD는 “기존 방송은 아무리 효율적으로 제작해도 드는 비용이 있고 제작에만 수개월이 걸린다”면서 “MCN 세계에서는 제작비 기준 자체가 매우 낮거나 없고 제작 기간도 대체로 일주일”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방송과 TV를 결합한 MBC TV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의 흥행은 MCN 열풍 속에서 흥미롭게 읽힌다.

가수와 요리사, 마술사, 개그맨 등이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면서 누리꾼들과 채팅을 하고, 그 과정은 편집을 거쳐 TV판 ‘마리텔’에 등장한다. 상대적으로 음지에 머물렀던 인터넷 방송을 대중의 입맛에 맞게 요리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 디지털 콘텐츠에서도 ‘롱테일’ 통할까

‘신서유기’와 ‘마리텔’은 TV에 매몰된 주류 미디어의 변화가 시작됐음을 보여줬다. 최정상 스타인 강호동과 박명수가 출연했다는 점도 디지털 콘텐츠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일각에서는 ‘신서유기’와 ‘마리텔’을 과도기적 콘텐츠로 평가하기도 한다. ‘마리텔’은 인터넷 방송을 하나의 소재로 차용했고, ‘신서유기’는 포맷이나 제작비에서 기존 방송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TV와 인터넷의 이종교합이 어떻게 어느 정도로 진화할지는 단언하기 이르다. 포맷과 장르, 작법이 다양해지면서 장르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채널 개념도 퇴색될 가능성이 크다.

MBC플러스 이강섭 PD는 “지금은 누구나 클릭해서 볼 수 있는 오픈형 플랫폼이지만 나중에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폐쇄형 플랫폼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역할을 하는 포털 사이트의 힘이 커지고, 클릭 수만을 노린 완성도 낮고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범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존 방송 권력인 나영석 브랜드에 거대 미디어기업(CJ E&M)과 가장 막강한 플랫폼(네이버)이 손잡은 ‘신서유기’ 흥행만을 보고 미래를 낙관해서는 안 된다는 게 방송가 인사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tvN 사업기획팀의 이기혁 팀장은 “’신서유기’가 좋은 성과를 냈지만 이렇게 규모 있는 건 자주 할 수 없다는 딜레마가 있다”면서 “기존 프로의 스핀오프(번외) 영상부터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 등 다양한 ‘잽’을 날려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비주류 80%가 주류 20%보다 뛰어난 가치를 창출한다는 ‘롱테일 법칙’을 기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디지털 콘텐츠의 개별 파급력은 기존 방송보다 못하다. 하지만 제작비가 적고 창작자가 많기에 더 다양하고 촘촘하게 라인업을 짤 수 있다. 그를 합하면 기존 방송보다 가치나 파급력이 더 클 수 있으며, 시청층 다원화와도 맞아 떨어진다.

방송가에서는 영상에 붙는 광고나 클릭 수로 얻는 수익 외에도 다양한 수익 모델을 찾아 나서고 있다. 방송법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해 어떤 심의와 규제가 가해질지도 신세계에서 주목해야 하는 요인이다.

[신아일보] 온라인뉴스팀 web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