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방문 D-7> 합덕에서 솔뫼까지… 충남 순례길을 걷다
<교황방문 D-7> 합덕에서 솔뫼까지… 충남 순례길을 걷다
  • 김기룡 기자
  • 승인 2014.08.0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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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순례길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

▲ 아시아청년대회 개최지인 당진 솔뫼성지가 주변환경을 개선하고 프란치스코 교황 맞이를 준비하고 있다.(사진=충남도정신문 맹철영 제공)

[신아일보=충남/김기룡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앞두고 충남 천주교 순례길을 나섰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곳이 많은 이들로 붐비기 전 서둘러 걸어보고 싶었던 이유다.

다양한 순례길이 있었으나, 솔뫼성지에서 합덕성당에 이르는 코스를 정했다. 비교적 짧고 편안한 코스로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길은 각별히 신경 쓰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하는 비밀통로처럼 조용히 뻗어있다. 길 위에는 정적이 고여 있었고 요란스러운 것은 발끝을 따라 피어오르는 비포장 길의 흙먼지뿐이었다. 주위를 둘러싼 내포평야의 광활한 공간은 길 위의 정적을 더욱 증폭시켰다.

모든 것을 채워 넣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도시의 밀도 높은 풍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돌았다. 문득 비움의 상쾌함이 찾아왔다. 마음이 탁 트였다. 비워내야 깊이가 드러난다는 단순한 원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편집자 주>

▲ 소나무 사이로 보는 솔뫼성지 십자가상.(사진=충남도정신문 맹철영 제공)

■ 하늘과 땅의 결이 만나는 솔뫼성지

지난 11일 솔뫼성지로 주변은 떠들썩했다. 뙤약볕 속에서도 중장비와 인부들의 움직임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환영하기 위한 일종의 대청소가 한창이었다.

약간의 소란스러움을 지나면 솔뫼성지에 도착한다. 솔뫼성지의 전체적 풍경은 아래로 펼쳐진다. 성지의 전반적 모습이 하늘로 높게 솟은 유럽풍 고딕 양식 아닌 소나무처럼 낮고 아담한 키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겨운 것은 성지를 에워싼 작은 담장들이다. 검은색과 회색의 벽으로 쌓아 올린 돌담은 어른 턱만큼의 높이다. 담 너머로는 솔뫼성지의 내부가 보일 듯 말 듯 시야에 넘실거린다. 마음을 두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부의 사정을 알 수 있지만, 관심이 없거나 스치듯 지나가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모호의 높이다. 아마도 솔뫼성지의 담벼락은 “자세히 봐야 알게 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말하려 했나 보다.

성지 바로 앞에는 ‘솔뫼성지’의 글귀가 새겨진 커다란 돌덩이가 장엄하게 놓여있다. 그 뒤로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하늘을 향하는 소나무의 결과 땅으로 내려앉는 돌덩이의 묵직함은 서로 강렬히 대립한다. 이 둘의 대립은 성지에 들어오기 전 하늘을 경외하되 땅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암시 같았다.

입구에는 좁고 견고하게 만들어진 세 개의 직사각형 돌문이 항공기 출입검사대와 비슷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었다. 각각의 입구는 오토바이가 지나지 못할 정도의 폭으로 엄격한 절제가 느껴졌다. 마치 세상의 욕망과 부도덕함을 지닌 채 통과하면 경고음이 울릴 것 같은 엄격함 이었다.

성지 내부는 넓어 한눈에 담아내기는 어렵지만, 아름답다. 성지 중앙에 높이 솟은 십자가와 그 앞에 세워진 12사도 성상(聖像)은 오래된 로마 시내의 거리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고풍스럽다. 성상주변에는 소나무가 낮고 넓게 깔렸는데, 이 전경은 신비스럽다.

천주교의 엄격함과 충남의 부드러움이 무척 조화롭게 구성된다. 직선과 곡선이 누구 하나 압도하지 않는 균형의 미다. 이둘 사이에 놓인 여백의 즐거움도 크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곳이 왜 솔뫼성지로 불리는지 격한 공감을 하게 된다.

솔뫼성지는 소나무가 우거진 산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국의 첫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이며 4대에 걸쳐 순교자가 나온 천주교의 못자리다.

오는 8월 15일에는 대전 교구를 중심으로 아시아청년대회가 개최된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날 참석해 아시아 청년에게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예정으로, 한국 천주교의 성지로 거듭 태어날 것이란 기대가 크다.

■ 솔뫼로 가는 길…성실함을 깨우다

▲ 순례길 안내 표지.(사진=충남도정신문 맹철영 제공)

솔뫼에서 합덕성당으로 향하는 순례길을 찾았지만, 녹록지 않았다. 이리저리 살폈으나 공사 때문인지 실패했다. 차를 타고 합덕으로 향했다. 거꾸로 솔뫼까지 걸어볼 요량이었다.

합덕성당은 솔뫼와 사뭇 달랐다. 작은 언덕위에 두 개의 탑을 가진 성당으로 좌우가 완전 대칭을 이뤘다. 엄격한 기하학적 모형의 외관은 성벽처럼 단단했다. 세상과의 타협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까지 전해졌다.

성당 앞에는 예수상이 내포평야를 향해 손을 벌리고 서있고, 성당 뒤편에는 6개의 비석과 4개의 순교비가 세워진 묘가 안치돼 있다. 오래전 죽음을 기리는 비석 왼편에는 합덕유스호스텔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관계가 묘하다. 과거와 현재가, 삶과 죽음이, 죽음과 내세에 대한 믿음이 한데 얽혀져 있는 공간이 내뿜는 비장함 때문이다.

햇살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서둘러 순례길에 올랐다. 다행히도 순례길 표지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 깔끔하게 정돈 된 순례길.(사진=충남도정신문 맹철영 제공)

솔뫼로 향하는 순례길은 북쪽을 향해 있었다. 두 사람이 팔을 벌리면 꽉 찰 정도의 폭이 작았고 비포장 바닥은 거칠었다. 조금 속도를 내면 먼지가 일었고 한낮의 폭염도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헐벗은 곳이었다.

편의점도 만날 수 없었고 순례길 안내판을 찾지 못해 방향을 잃기도 했다. 믿을 것은 성실한 걸음이었다. 열심히 걸어가자 4차선 도로 너머에 솔뫼성지가 나타났다.

▲ 합덕성당 전경.(사진=충남도정신문 맹철영 제공)

순례길을 걷는 내내 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게 바로 길이다. 하지만 길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 길에는 각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세 봉건시대의 길은 권력을 향해 모여든다.

이 길 속에 있는 모든 것은 왕을 중심으로 배열되며 왕궁에서 멀어질수록 힘없고 작은 존재들이 모여 산다.

오늘날 자본시대의 길은 이윤을 좇아 대도시를 향해 얽히고 흐른다. 땅의 가격에 따라 대로와 광장이 배치된다. 그 주변은 상품을 팔기 위해 곱게 화장한 화려한 상가들로 치장된다.

그 길속에서 최고의 미덕은 소비다. 소비할 수 없는 인간은 끝없이 좁고 거친 길로 밀려난다. 길은 단순히 빈공간이 아니다.

그곳에는 인간의 욕망이 흐른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길을 걷고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삶의 형태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천주교 순례길은 평등했다. 종아리의 근육과 굵직한 땀방울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목표한 곳에 도달할 수 있다. 돈과 권력을 잣대로 길 위에 있는 이들을 내쫓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필요한 미덕은 열심히 걸어가는 성실함이 전부였다.

▲ 합덕성당에서 바라본 세상.(사진=충남도정신문 맹철영 제공)

현시대의 가장 큰 불행은 어쩌면 성실함에 대한 믿음이 상실되면서 시작됐을지 모른다. 오늘의 땀이 내일의 결실로 이어지지 않고, 로또 맞은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지배하는 사회가 평온할 리 없다.

늘 성실함을 떠올리면 아버지가 임종했을 순간으로 돌아간다. 평생 노동에 매달린, 누구보다 성실한 가장이었다. 월남도 지원하고 몇 해 동안 중동근로자로 나갔으며, 하루에 20시간가량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임종에 이르렀을 때에도 여전히 빈곤한 가정이었다. 이 사실에 직면하는 것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순례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삶은 더 단순해져야 한다고. 걸은 만큼 나아가고 나아간 만큼 땀을 흘리는 이치가 필요하다고. 그래야만 성실히 살아가는 힘없고 작은 존재들이 존중받고 지켜질 수 있음을.

우리 옆에 천주교 순례길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굳이 종교적 이유를 들지 않아도 된다. 소박한 이 길 위에서 우리의 내면은 더 단단하고 단순한 형태로 조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