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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의 비,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
조선 태종의 비,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
  • 황미숙
  • 승인 2014.01.2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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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전장에 나아가 태종과 함께 죽고자 하였다

태종의 비(妃), 창덕소열원경 왕후(彰德昭烈元敬王后) 민씨(閔氏; 1365년 ~ 1420년)는 본관이 여흥(驪興), 문하좌정승 여흥부원군 문도공(門下左政丞驪興府院君文度公) 민제(閔霽)의 딸이다. 지정(至正) 25년 을사 공민왕 14년 송경 철동(鐵洞) 사저에서 나고, 홍무(洪武) 임신년 태조 원년에 정녕옹주(靖寧翁主)로 봉해졌으며, 경진년 정빈(貞嬪)으로 책봉되었다가, 태종이 왕위에 오른 뒤 정비(靜妃)로 책봉되었다. 경자년 세종 2년 7월 10일 병자에 수강궁(壽康宮) 지금의 창경궁 별전(別殿)에서 승하하니, 56세였다. 세종 6년에 창덕소열(彰德昭烈)이라고 존호를 추상(追上)하였다. 능은 헌릉(獻陵)대왕의 능과 같은 언덕에 있다.

《동각잡기》에 의하면 무인년(1398) 가을에 태조가 병이 들었는데, 정도전이 태조의 요양을 위하여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의논하자고 핑계하여 모든 왕자를 불러 이 기회에 난을 일으켜서 자기 당이 안에서 어떻게 처치하고자 하였다. 전(前) 참찬(參贊) 이무(李茂) 또한 정도전의 당인데, 모의한 것을 다 태종에게 몰래 누설하였다. 그때에 태종이 모든 형들과 더불어 항상 근정전(勤政殿) 문 밖에서 잤었는데, 원경왕후(元敬王后 태종의 비)가 아우 민무질(閔無疾)과 모의하여 종 김소근(金小斤)을 보내어 원경왕후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고하니, 태종이 곧 집으로 돌아왔다.

태종이 원경왕후와 민무질과 더불어 한참동안 가만히 이야기하였는데, 원경왕후가 울면서 태종의 옷깃을 잡고 궐내에 가지 말라고 하였다. 태종이 말하기를,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가지 않겠는가. 또 모든 형들이 다 궐내에 있으니, 이 일을 알리지 않을 수 없다.” 하며, 분연히 나갔다. 원경왕후가 문 밖까지 따라 나와서 말하기를, “조심하고 조심하소서.” 하고, 곧 동생 대장군 민무구(閔無咎)와 장군 민무질과 함께 모의하여 병기와 말을 몰래 준비하여 태종을 응원할 계책을 세워놓고 기다렸다.

그러나 거사에 대해 결과를 알 수 없었던 원경왕후(元敬王后)가 태종이 있는 곳에 가서 화를 함께 당하고자 하니, 휘하 군사들이 말렸다. 주저하는 사이에 하인 김소근(金小斤)이 피살된 정도전의 갓과 칼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고서야 원경왕후가 돌아왔다. 방간의 난에 군사 목인해(睦仁海)가 탄 태종 집의 말이 화살을 맞고 달아나서 스스로 자기 마구에 찾아 온 것을 보고 원경왕후는 반드시 싸움에 졌다 생각하고 스스로 전장에 나아가 태종과 함께 죽고자 하였다. 걸어서 가는데 시녀(侍女) 김씨 등이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이웃집 노파 정사파(淨祀婆)란 사람이 이겼다는 소문을 듣고 와서 고하자 이내 돌아왔다.

태종은 재위 6년(1406) 양위를 선언했다가 철회한 적이 있었는데, 1년 후 민무구와 민무질 형제는 그때 슬퍼하지 않고 어린 세자를 끼고 정권을 잡으려 했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이 때문에 두 형제는 제주도로 유배가야 했다. 정사·좌명 1등 공신 이무(李茂)가 명나라 사행으로 가면서 “민씨 형제는 사실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유배되었다”라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두 형제는 억울했다. 그러나 이무는 이 말 때문에 교살 당했고, 민씨 형제 또한 그 여파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태종은 두 처남을 사형시킨 직후 외척경계론을 담은 교지를 발표해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왕비 민씨는 폐비의 위기까지 몰렸으나 세자의 생모라는 이유로 겨우 무사했다. 결국 태종의 외척 제거로 피붙이를 잃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린나이의 성녕대군 마저 떠나보내게 되자, 원경왕후 민씨는 아들의 묘 앞에 대자암을 짓고 그의 명복을 비는 것으로 말년을 보냈다.

조선이 개국을 하고 그 기틀을 마련하던 시기에 원경왕후 민씨는 결단력 있은 여인 이었다. 그러나 왕이 된 남편에 의해 여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남편에 의해 친정 혈육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다. 그녀가 살아내야 했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현대의 여성들은 조선의 여인과 어떤 차이의 삶을 살아가는 걸까. 여성이 큰소리치며 살아간다고 한다는데 아직도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의 대부분은 유리천장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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