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프로그램이야? 성인방송이야?
가요프로그램이야? 성인방송이야?
  • 오규정 기자
  • 승인 2014.01.23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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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넘은 걸그룹 섹시 경쟁 ‘눈살’

살아남기 위한 선택  vs  아이디어 빈곤 드러내
“청소년에 모방 심리 일으켜… 기획사 변해야” 

[신아일보=오규정 기자] ‘걸그룹 방송심의 안 걸리나요. 15세 관람가인데 가족들과 못 볼 정도로 민망해 죽겠네요. 소속사에 문의해서 춤을 변경하든지 성인방송도 아니고.’(윤**)

지난 19일 SBS ‘인기가요’ 게시판에는 걸스데이, 에이오에이(AOA) 등 걸그룹의 무대를 본 시청자의 항의 글이 올라왔다.

걸그룹 의상과 춤의 선정성에 대한 시청자의 지적은 어제오늘이 아니지만, 이달 들어 걸그룹들이 대거 섹시 코드를 앞세워 컴백하며 수위가 지나쳐 보인 것이다.

‘섬싱’(Something)으로 활동 중인 걸스데이는 이 곡의 방송 무대에서 한쪽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트임 치마를 입고 바닥에 엎드려 골반을 흔들거나 깃털을 든 손으로 다리를 훑는다. 멤버들은 게슴츠레 한 눈으로 카메라를 쳐다본다.

‘B.B.B’로 컴백한 달샤벳 역시 레깅스처럼 몸에 딱 붙는 바지를 입고 각선미를 드러낸다. 골반을 흔들거나 가슴을 문지르는 듯한 느낌의 손동작을 선보인다.

뒤를 이어 컴백한 걸그룹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수위가 더 강하다.

지난 20일 에이오에이, 레인보우 블랙의 기획사들은 각각 ‘원초적 본능 춤-샤론 스톤 연상 퍼포먼스 후끈’, ‘쇼걸 변신-가터벨트·코르셋·채찍 춤 등 섹시포인트로 섹시 종결’ 등 자극적인 문구의 홍보 자료를 냈다.

가요계는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유독 섹시 콘셉트를 택하는 팀 중 신인이나 뜨지 못한 팀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로 보인다.

한 음반기획사 신인개발 팀장은 “주목도를 높여 가수를 띄우기 위한 몸부림”이라며 “여러 걸그룹들이 섹시미를 무기로 성공한 사례가 있고 일단 자극적이면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오르는 등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니 전략적으로 너도나도 뛰어드는 것이다. 시장 상황이 안 좋으니 그만큼 절실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획력 부재와 아이디어 빈곤을 드러낸 것이란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한 음반기획사 이사는 “신생 기획사가 크레용팝처럼 재미있는 콘셉트의 그룹을 탄생시켰다”며 “이런 차별화된 아이템을 찾아야지 걸그룹은 무조건 섹시해야 뜬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업계조차 섹시 일색인 걸그룹의 경쟁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 아이돌 그룹 기획사 대표는 “앨범을 만드는 우리도 섹시 콘셉트가 지겨운데 보는 사람은 얼마나 지겹겠냐”며 “똑같은 콘셉트로 쏠린 걸그룹들이 우후죽순 나오면 소비자는 쉽게 싫증을 느끼고 결국 외면한다. 되레 아이돌 가수의 수명을 단축하는 독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음악 소비자와 시민단체는 이들 걸그룹을 동경하는 청소년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직장인 정희영(44) 씨는 “일부 걸그룹에는 10대 멤버가 포함돼 있다”며 “10대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섹시한 척하는 몸부림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안쓰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문제는 문화란 테두리 안에서 가이드라인을 통한 권고 외에 이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K팝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란 점에서 국내 시장 정서와 눈높이에만 맞춰 제작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로 인해 일차적으로 기획사들의 의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석현 팀장은 “현실적으로 규제가 어려우니 음반기획자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며 “노래와 춤 실력이 떨어지는데 의상만 과하면 천박하게 느껴지듯이 화제성보다 음악성에 집중해야 한다. 또 TV는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가, 뮤직비디오는 주로 청소년들이 즐기는 콘텐츠란 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자정 노력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