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새 추기경은 누구인가> "나만 옳다고 쌓아 올리는 바벨탑 무너뜨리자"
<염수정 새 추기경은 누구인가> "나만 옳다고 쌓아 올리는 바벨탑 무너뜨리자"
  • 기획팀
  • 승인 2014.01.1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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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정 한국의 세번째 추기경…화합과 통합 강조

 

▲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에 임명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가 13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서울대교구청 주교관 앞마당에서 열린 임명축하식에서 취재진과 신도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12일 추기경 서임이 확정된 염수정(71) 대주교는 국내 가톨릭의 최대 교구인 서울대교구장으로 평양교구장 서리도 겸하고 있다. 세례명은 안드레아.

고 김수환(1922∼2009) 추기경과 정진석(83) 추기경에 이어 한국에서 나온 3번째 추기경이다.

1943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염 대주교는 가톨릭대 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70년 사제품을 받았다.

서울 불광동성당과 당산동성당 보좌신부를 거쳐 1973∼77년 성신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이태원과 장위동, 영등포 본당 주임 신부 등을 거쳐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사무처장과 신학과 조교수를 맡아 가톨릭 교육에 힘썼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서울대교구 사무처장을 맡아 서울대교구의 운영에 큰 기여를 했으며, 서울대교구 제15지구장 겸 목동 성당 주임 신부를 거쳐 2001년 12월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에 임명돼 2002년 1월 주교품을 받았다.

이후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와 주교회의 상임위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감사 등을 맡았다.

2012년 5월에 서울대교구장 계승이 결정돼 같은해 6월 착좌식을 가졌다.

이때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정진석 추기경의 서울대교구장 사임 요청을 수락하고 서울대교구 총대리로 당시 주교였던 염 대주교를 후임으로 임명하였다.

염 추기경은 서임 소감을 밝히며 “목자의 임무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양을 모으는 일”이라고 했다. 그건 쪼개지고 충돌하며 갈등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향한 일침이기도 했다.

추기경은 우리 사회의 화두는 뭔가라는 물음에 각자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는 점이다. 그걸 통해선 하나가 될 수 없다. 하느님께선 그런 바벨탑을 부수고 흩어놓으셨다. 그렇게 무너지고 흩어지고 난 뒤에 인류는 하나가 됐다. 거기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길이 있다. 그걸 깊이 들여다 봐야 한다.”고 말했다.

 
추기경은 각자의 바벨탑에 대해 '인간의 고집으로 옳다고 믿는 것들이다. 그게 무너지고 흩어질 때 우리는 하나가 된다. 하느님 앞에는 여야가 없다. 당(黨)이라는 건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런 부분적 시선을 갖고 전체를 매도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염 추기경은 그런 사례가 역사 속에 숱하게 있다고 했다. 인간의 고집, 인간의 신념으로 쌓아 올라가는 바벨탑을 통해선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좌와 우로,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싸우는 우리 사회의 고집스러운 진영이 바로 추기경이 지적하는 바벨탑 중 하나였다.

■추기경의 지위와 역할

교황 보좌 최고위 성직자…종신직·교황 선거권 가져

▲ 지난 2012년 6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제14대 서울대교구장 착좌 미사에서 염수정 대주교(왼쪽)가 전임 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에게 목장을 전달 받는 모습.
12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 따르면 추기경이라는 용어는 그레고리오 대교황(590∼604년) 때에 교회법 용어로 채택됐다.

추기경에서 추기(樞機)라는 말은 중추가 되는 기관을 말하며, 경(卿)은 높은 벼슬에 대한 경칭이다.

추기경의 서임은 전적으로 교황에게 달렸다. 교황의 명시적인 의사 표시로 추기경이 서임되며 교황은 전세계에서 적격자를 뽑아 추기경으로 임명한다.

새 추기경은 서임되는 즉시 추기경단 특별법에 따라 교황 선거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갖게 된다.

통상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에서 공개 추기경회의를 열어 서임장을 낭독해 새 추기경을 정식으로 서임하면 새 추기경은 신앙 고백과 교회에 대한 충성 서약 등을 하게 된다. 교황은 새 추기경에게 추기경의 고귀한 품위를 표상하는 '붉은 모자'를 씌워 준다.

다음날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새 추기경과 함께 미사를 공동 집전하며 이때 추기경 반지를 수여한다. 추기경의 복장은 모두 붉은색이다.

추기경은 합의체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교황을 보필할 의무를 갖는다. 추기경단의 모든 회합은 반드시 교황이 소집하고 주재한다.

교황청에서 일하는 추기경은 로마에 상주해야 한다.

추기경의 가장 큰 권한은 바로 교황 선출이다.

교황의 선종이나 사임으로 '사도좌 공석'(sede vacante) 상태가 되면 15∼20일 사이에 콘클라베(교황선거)를 개시해야 하므로, 교황 선출권을 가진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바티칸에 모여야 한다.

추기경단은 수석 추기경이 지휘하는데 수석 추기경은 교황의 선종 소식을 전해 듣는 즉시 모든 추기경에게 소식을 알리고 추기경회의를 소집한다.

일단 추기경으로 임명되면 추기경으로서 신분상의 지위는 종신직이다. 하지만 80세가 되면 법률상 자동적으로 교황 선거권을 비롯한 모든 직무가 끝난다.

이에 따라 1931년생인 정진석 추기경도 2012년 염 추기경에게 서울대교구장직을 물려주고 은퇴했으며, 80세가 넘어 작년 콘클라베에 참석하지 못했다.

추기경의 숫자는 13∼15세기에는 30명 이내로 일정하지 않았으나 16세기 들어 70명으로 늘어났다. 이후 교황 요한 23세가 1962년 추기경 수를 80명으로 늘렸다.

교황 선거권 행사의 정년을 80세로 규정한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황 선거권을 가지는 80세 미만의 추기경들이 120명을 초과하지 않도록 정했다.

현재 추기경의 수는 이번에 염 추기경과 함께 서임된 19명을 포함하면 총 218명이다. 이중 콘클라베에서 교황 선출권을 갖는 80세 미만은 일단 123명이 됐다.

우리나라는 1969년 당시 김수환 서울대교구장이 추기경에 서임되면서 처음으로 추기경을 배출했다. 이후 2006년 2월 정진석 당시 서울대주교가 두 번째로 추기경에 서임됐다.

 

▲ 염 대주교(왼쪽 두번째)의 가족사진.

사회분열·갈등치유, 사회적 약자 보듬길 기대

천주교 염수정 서울대교구장이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이 됐다는 소식에 13일 시민사회는 일제히 환영하며 앞으로의 행보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특히 천주교 본연의 역할대로 사회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약자들을 보듬어주길 바라는 이들이 많았다.

회사원 이정민(26·여)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소 발언처럼 염 추기경도 사회적 약자들을 특히 신경 써줬으면 한다"며 "중도보수 성향으로 알려졌지만 이제 추기경으로 선출된 만큼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정도(正道)를 걷기 바란다"고 말했다.

▲ 1972년 6월 18일 성신고 교사로 재직했던 염 대주교(앞줄 오른쪽).

대학생 윤민수(25)씨는 "한국에서 세 번째로 추기경이 나온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며 "요즘 여러 일로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한데 새 추기경 탄생을 기점으로 갈등이 조금이나마 해소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용산 참사, 밀양 송전탑 사태 등 사회문제와 관련해 그 어느 때보다 천주교 사제나 수도자, 신자들의 참여가 많은 만큼 염 추기경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서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실천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김용해 서강대 신학대학원 철학과 교수는 "염 추기경도 자신에게 막중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교황이 추진 중인 교회 개혁에 기대어 지역 교회의 대표로서 자문하고 보조해야 하는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1993년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재직시절 야유회에 참석한 염 대주교.

정종훈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이 탄생한 것은 한국 교회의 위상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그만큼 염 추기경이 세계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앞장서길 바란다"고 전했다.

반면 새 추기경에게 천주교의 직접적인 정치개입을 최소화할 것을 주문하는 이들도 있었다.

회사원 이유미(28·여)씨는 "천주교가 영향력이 큰 종교인 만큼 시국미사 등 정치적 입장 표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염 추기경이 평소 '직접 정치개입은 사제 몫이 아니다'고 밝힌 만큼 중심을 잘 잡아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실장은 "천주교가 정치세력화에 휘말리지 않고 사회 어두운 곳을 비추는 본연의 순수한 의도로 돌아갈 수 있게 염 추기경이 힘써주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 등산중인 염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