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
  • 황미숙
  • 승인 2013.03.0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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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고구려 25대 평원왕(平原王)의 딸, 평강공주(平岡公主)
평강공주(平岡公主)은 고구려 25대 평원왕(平原王)의 딸이며, 남편은 장군 온달(溫達)이다.

≪삼국사기≫ 〈온달전〉에 의하면, 평강공주는 어려서 잘 울었으므로 아버지인 평원왕은 울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너는 잘 울어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자라서 사대부의 아내는 되지 못하겠다.

마땅히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야겠다.

” 이때에 온달(溫達-?~590)은 용모가 괴상하고 집이 가난하여 남루한 옷차림에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항상 거리를 구걸하며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이 바보 온달이라고 하였다.

공주가 16세가 되었을 때 왕은 그를 상부(上部)의 고씨(高氏) 집안에 시집보내려 했다.

이 때 공주는 말하기를 “아버님께서는 늘 너는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하셨는데 무슨 까닭으로 딴 말씀을 하십니까? 신분이 낮은 사람도 한번 언약한 말을 지키지 않는 일이 없는데 항차 지존으로서야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왕은 공주를 여러 번 달래었으나 듣지 않자 공주를 대궐에서 내쫓았다.

궁궐을 나와 혼자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을 만나 온달의 집을 물어 그 집에 이르렀다.

눈 먼 늙은 할멈이 있음을 보고 앞으로 가까이 가서 절하고 그 아들이 있는 곳을 물으니, 늙은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우리 아들은 가난하고 추하여 귀인이 가까이할 인물이 못됩니다.

지금 그대의 냄새를 맡으니 향기가 이상하고, 손을 만지니 부드럽기가 풀솜과 같으니 반드시 천하의 귀인이요. 누구의 속임수로 여기에 오게 되었소. 내 자식은 굶주림을 참지 못하여 산으로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간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소.” 공주가 그 집에서 나와 걸어서 산 밑에 이르러 온달이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속에 품은 바를 말하니 온달이 화를 내며 이르기를 “이는 어린 여자의 행동할 바가 아니다.

분명코 사람이 아니라 여우나 귀신이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 하며 그만 돌아보지도 않고 갔다.

공주는 혼자 온달의 집으로 돌아와 사립문 아래서 자고, 이튿날 다시 들어가서 어머니와 아들에게 상세히 말하였는데, 온달은 우물쭈물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였다.

“내 자식은 누추하여 귀인의 배필이 될 수 없고, 내 집은 가난하여 귀인의 거처할 곳이 못되오.” 공주가 대답하였다.

“옛 사람의 말에, 한 말 곡식도 방아 찧을 수 있고, 한 자 베도 꿰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마음만 맞는다면 어찌 반드시 부귀한 후에야 함께 지낼 수 있겠습니까?” 이에 금팔찌를 팔아 농토와 집, 노비, 우마와 기물 등을 사니 살림살이가 다 갖추어졌다.

남자는 천하(天下)를 움직이고, 여자는 그 남자를 움직인다고 했던가. 처음 말을 살 때에 공주는 온달에게 말하였다.

“아예 시장 사람들의 말은 사지 말고 꼭 국가의 말을 택하되 병들고 파리해서 내다 파는 것을 사오도록 하시오.” 온달이 그 말대로 하였는데, 공주가 매우 부지런히 먹여 말이 날마다 살찌고 건장해졌다.

고구려에서는 항상 봄철 3월 3일이면 낙랑의 언덕에 사람들이 모여 사냥을 하고, 그 날 잡은 산돼지·사슴으로 하늘과 산천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그 날이 되면 왕이 나가 사냥하고, 여러 신하들과 5부의 병사들이 모두 따라 나섰다.

이에 온달도 기른 말을 타고 따라 갔는데, 그 달리는 품이 언제나 남보다 앞에 서고 포획하는 짐승도 많아서, 다른 사람은 그를 따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 뒤, 북주(北周)의 무제(武帝)군대가 침공해왔을 때, 온달이 고구려군의 선봉이 되어 적을 격파하고 대공을 세웠다.

그때 왕은 온달을 사위로 인정하고 예를 갖추어 맞이했다.

평원왕을 이은 영양왕 때, 뒤에 온달이 신라에 빼앗긴 계립령(鷄立嶺)과 죽령(竹嶺) 서쪽의 땅을 되찾기 위해 출전하여 신라군과 싸우다 아단성(阿旦城) 밑에서 전사했는데 시신을 넣은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라고 하자 마침내 관이 움직여 장사지낼 수 있었다.

김부식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혼인을 알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남자가 여자 집으로 장가가는 것[서류부가혼]이 고구려의 풍속인데, 평강공주가 온달에게 시집가서 천하가 다 아는 ‘바보’가 한 나라의 영웅이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남편은 여자하기 나름인가, 아내 평강공주의 지극정성이 남편 온달을 성장 시켰고, 결국 평원왕이 사위의 예를 갖추어 맞이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수세기 전에 울보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이 혼인을 통해 인생을 완성해 갔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결혼 풍속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