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달을 반쪽만 가지고 돌아올까 두려워하며
둥근 달을 반쪽만 가지고 돌아올까 두려워하며
  • 황미숙
  • 승인 2013.01.2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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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고려의 문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이규보(李奎報, 1168(의종 22)∼1241(고종 28))의 초명은 인저(仁底)인데 꿈에 규성(奎星)이 나타나 신이한 행적을 보였음으로서 인하여 규보라는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황려현(黃驪縣) 사람으로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이다.

벼슬은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고, 하음백(河陰伯)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순공(文順公)이다.

만년에는 시·거문고·술을 좋아하여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마(詩魔)에 붙들려 창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문인으로서 《동국이상국집》이라는 방대한 시문집과 함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 〈동명왕편〉을 지은이로 기억할 것이다.

〈동명왕편〉은 주몽으로 알려진 동명왕의 영웅적이고 모습들을 찬양한 오언(五言) 장편 282구의 장편 서사시다.

그는 민족정신의 고취를 위해 몽고침략시기에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을 찬양하고 역사적인 실체를 가지고 시를 썼다.

이때가 천마산에 은거하던 26세 때였다.

그는 고려의 문인으로 명예를 얻기 위해 무인정권에 결탁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시풍(詩風)은 대단했다.

이규보(李奎報)는 재능이 민첩하고 축적된 식견이 풍부하여 많이 짓고 빨리 짓기를 겨루자면 당대에 따를 자가 없는 시인으로서의 재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시만 해도 7,000수를 지은 그의 수많은 작품을 아직도 다 읽지 못하였으나, 그의 글 중에서 천둥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늘에서 천둥이 울릴 때에는 사람의 마음이 다 같이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뇌동(雷同)이라 한다.

나는 천둥소리를 들을 때 처음에는 덜컥 겁이 났다가, 여러 모로 생각하여 잘못을 반성해 보고 별로 거리낄 만한 것이 발견되지 않으면 그제야 몸이 좀 펴지게 되었다.

그런데 다만 한 가지 꺼림직한 일이 있다.

내가 일찍 좌전(左傳)을 읽다가, 화보(華父:춘추(春秋)시대 송(宋)나라의 화보독(華父督)이 길에서 공보(孔父)의 아내를 보고 눈으로 맞이하여 보냈다는 것)가 눈으로 맞이하였다는 기사를 보고 속으로 그를 나쁘게 여겼었다.

그러므로 길을 가다가 예쁜 여자를 만나면 곧 서로 마주보지 않기 위하여 마침내 머리를 숙이며 외면을 하고 달아났다.

그러나 머리를 숙이며 외면하는 것은 전혀 마음에 없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것이 나의 마음에 스스로 의심했던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일반 사람의 상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으니, 남이 자기를 칭찬하면 기쁘지 않을 수 없고 비난하면 언짢은 기색이 없을 수 없었다.

이것은 비록 천둥칠 때처럼 두려워할 것까지는 없지만 또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옛 사람은 깜깜한 방에서도 마음을 속이지 않았다 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에 미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천둥을 의식하지 않음과 칭찬과 비난을 의식하지 않음을 이야기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자신의 마음을 단속하는 일이 제일 어려운 일인 것이다.

나는 정당하다고 외치면서 다른 사람은 비난한다.

나는 다르다고 떠들어 대지만 여전히 그들과 다를 바 없다.

둥근 달을 반쪽만 가지고 돌아올까 두려워하며 살아간다면 조금을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규보는 또 〈산에서 밤을 보내며 우물 속의 달을 읊다〉를 노래한다.

“산사(山寺)의 중이 맑은 달빛 탐내어(山僧貪月色)/ 물과 함께 한 항아리 담뿍 떠갔으나(幷汲一甁中)/ 절에 가면 의당 알게 되리라(到寺方應覺)/ 항아리 물을 쏟고 나면 달빛 또한 비게 됨을(甁傾月亦空)”. 그림자에 마음을 빼앗기고, 온몸을 바쳐 따라 갔건만 여전히 손에 잡히는 것은 없고 저만치 물러서는 욕망은 자꾸 날더러 오라며 손짓한다.

제 것도 아닌 것을 품고 배달하기 바쁜 택배기사 노릇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할 때도 되었다.

노후 걱정하랴 건강 걱정하랴 정작 오늘은 행복하지 않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인데, 10년 뒤를 20년 뒤를 염려한다.

그리고 여전히 저 앞에 놓은 것들을 위하여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제 잠시 멈추어서 서서 내 눈동자 속을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