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은 사람이되,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
하는 일은 사람이되,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
  • 황미숙
  • 승인 2012.09.0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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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촉한 유비의 전략가, 제갈공명(諸葛孔明)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제갈량(諸葛亮)의 등장은 극적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제갈량이 있음으로 해서 촉한은 비로소 솥발의 하나를 차지하는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의 정족지세(鼎足之勢) 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로 제갈량을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제갈량이 유비를 세 번씩이나 찾아오도록 한 것인가. 신출귀몰 하다는 제갈량이 어찌 맨주먹의 유비와 함께 천하를 도모하려고 했던 것인가. 과연 제갈량은 실제로도 당대 최고의 전략가였던가. 제갈량(諸葛亮, 181~234)은 자는 공명(孔明)이며, 별호는 와룡(臥龍)·복룡(伏龍). 형주의 초야에서 지내던 중 제갈량의 나이 29세 때 유비(劉備)의 삼고초려로 세상에 나온 제갈량은 재략으로 유비를 도와 촉한 건국을 이루었다.

적벽에서 손권(孫權)과의 연합을 이끌어내 당대 최강의 제후인 조조(曹操)의 남하를 저지하였고, 형양을 차지한 후 유비를 제위에 오르게 하여 제갈량은 승상의 직에 오른다.

유비의 사후 출사표(出師表)를 후주 유선(劉禪)에게 올린 후 중원을 차지하고자 하였으나, 적수 사마의(司馬懿)와의 대결 도중 오장원에서 나이 54세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출사표는 후세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고 평하는 명문으로 꼽히고 있다.

위?오?촉 3국이 경쟁하던 시기에 조조와 손권은 유비보다 먼저 확고한 국력을 마련하였다.

조조는 승상에 자리에 앉아 천자를 허수아비로 만들었지만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 들었고, 손권은 양쯔강 아래에서 차곡차곡 힘을 길러가고 있었다.

유비는 궁벽한 땅에서 웅지를 모으고 있었으니 도원결의로 의형제를 맺은 관우와 장비, 마초와 황충 그리고 조운, 제갈량이었다.

제갈량은 천하삼분지계로 세상을 나누고자 했다.

멸망해 가는 한나라의 영광을 되살리고자 황족인 유비에게 충성을 다하여 촉한을 건국하게 이르렀다.

225년, 제갈량이 남중(南中)에 도착해 싸우는 곳마다 이겼다.

맹획(孟獲)이라는 자에게 이인(夷人)과 한인(漢人)이 복종한다는 것을 듣고 그를 생포하도록 했다.

그를 붙잡은 후, 풀어주어 다시 싸웠다.

일곱 번 풀어주고 일곱 번 사로잡았는데(七縱七禽), 제갈량은 여전히 맹획을 보내주려 했다.

맹획이 떠나지 않으며 말했다, “공은 천위(天威)를 지닌 분이니, 우리 남인(南人)들은 다시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 이에 남중이 평정되자 모든 곳에 그 현지 군장들을 임용했다.

어떤 이가 제갈량에게 간언하자 제갈량이 말했다, “만약 외인(중국인)을 남겨두면 응당 군사도 남겨야 하는데, 군사를 남기면 먹을 것이 없으니 이것이 첫번째 어려움이요. 게다가 이인(夷人)들이 이제 막 상하고 격파되어 그 부형들이 죽었는데, 외인들이 남아 있으면서 군사가 없으면 필시 재앙과 우환이 생길 것이니 이것이 두번째 어려움이요. 또한 이인들이 누차 폐살하는 죄를 지어 스스로 자신의 죄가 중함을 꺼림칙해 하는데, 만약 외인을 남겨두면 끝내 서로 믿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세번째 어려움이오. 지금 나는 군사를 남기지 않아 운량(運糧)할 필요를 없애고, 기강(紀綱)을 대략적으로만 정해 이인과 한인들이 대체로 편안케 하려 하오.” 조조와 손권은 서로 유비만 없다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죽는 날까지 촉한을 위해 전쟁터를 누비었다.

그리고 제갈량이 사라진 중원은 한 치가 부족한 사마의(司馬懿) 중달(仲達)이 뒤를 이어간다.

결국 위나라는 사마 집안으로 주인 자리를 내 주어야 했다.

《삼국지》에서 진수(陳壽)는 제갈량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제갈량은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시대에 맞는 정책을 내고, 마음을 열고, 공정한 정치를 행하였다.

이리하여 영토 안의 사람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형벌과 정치는 엄격했는데도 원망하는 자가 없었던 것은 그의 마음가짐이 공평하고 상벌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년 군세를 동원하면서 성공을 거둘 수 없었던 것은, 생각하건대 임기응변의 군략은 그의 장기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서술했다.

《논어》〈술이편(述而篇)〉에서 공자는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고 황하를 걸어서 건너며, 죽을지언정 후회하지 않는 자와는 나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필히 일에 임해 두려워하고, 즐겨 도모하여 일을 이루는 자와 함께 할 것이다.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두려움을 아는 자는 모든 일을 함부로 시작하지 않는다.

그리고 장담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는다.

훌륭한 장수는 자신의 무공을 남에게 자랑하지 않는다.

떠벌리고 나대고, 호언장담하는 자가 오랫동안 자신 지켜가는 경우는 찾아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