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에 쌓인 강철
솜에 쌓인 강철
  • 황미숙
  • 승인 2012.08.2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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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삼국의 촉한, 유비(劉備)
위?오?촉의 삼국의 쟁패를 다룬《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은 유비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유교적 명분을 생각해서 유비의 촉한을 중심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진(晋)을 생각해서 조조의 위나라를 중심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시대의 가치와 잘 부합되었던 인물로 유비가 우세를 이뤘다.

역사적 사실의 허구화 과정에서 事實이 본래의 모습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각각의 시기에 따라 그 시대가 요구했던 이념체계가 《삼국지연의》작품 속에 녹아들었다.

유비(劉備 161~223)의 자는 현덕(玄德), 시호는 소열제(昭烈帝)이다.

그는 물려받은 유산도 기반도 없이 난세에 패업을 이루려 하였으나 무용조차 뛰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울보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맨 주먹으로 일어나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는 물론 조자룡과 제갈공명 등을 얻고, 천하의 3분의 1을 차지하였다.

유비는 탁군 탁현출신으로, 팔이 길어 그대로 뻗어 무릎까지 닿고, 귀도 남달리 커서 거울을 사용하지 않고도 자신의 귀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어려서 아버지 유홍을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짚신과 멍석을 만들어 생계를 꾸려나갔다.

집안 동남쪽에 높이 5길이 넘는 뽕나무가 있어 가마 덮개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 집에서 귀한 인물이 날 것이다”라고 예언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황건의 난 때, 유비는 기꺼이 천하호걸과 교류했으며, 그 가운데 관우와 장비도 있었는데, 세 사람의 깊은 관계가 《삼국지연의》의 첫 부분에 나오는 ‘도원결의(桃園結義)’이다.

배송지가 《삼국지》주석으로 인용한 이야기가 있다.

유비가 변소에 가서 허벅지에 살이 찐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눈물 자국을 본 유표가 그 이유를 묻자 “나는 항상 말안장에서 떠나본 일이 없기 때문에 허벅지에 살이 찌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말에 오르지 않아 벌써 허벅지에 살이 붙고, 세월이 흘러 노년에 가까운데 아무런 공적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탄한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유명한 ‘비육지탄(脾肉之嘆)’이란 고사다.

220년 위왕 겸 대장군 대승상 조비(曹丕)가 한나라 헌제에게 강제로 선양받아 황제가 되었는데, 이때 촉한에서는 헌제가 살해되었다고 전해진다.

헌제 살해 소식은 물론 그릇된 소문이었지만, 이것이 유비가 제위에 오르는 명분이 되었으므로 제갈량은 유비에게 황제로 즉위하도록 권했고, 221년 4월 마침내 유비는 황제로 즉위했다.

연호를 장무(章武)로 하고, 유선(劉禪)을 황태자로 세웠다.

223년 4월 관우, 장비의 사망과 이릉전쟁으로 인한 화병이 심해진 유비는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하고, 63살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진수는 유비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선주는 포부가 크고 굳세며 관후하고, 선비를 잘 대우하니 한 고조의 풍도와 영웅의 그릇을 갖추었던 것 같다.

나라를 들어 제갈량에게 탁고했으나 심신에 두 갈래가 없었으니 실로 군신의 지극히 공정함은 고금의 아름다운 본보기다.

기지와 임기응변, 재능과 모략은 위 무제(조조)에는 미치지 못해 이 때문에 그 영토는 협소했다.

그러나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고 끝내 남의 아래에 있지 않았으니, 저들의 기량으로 필시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리라 헤아리고, 오로지 이익만을 다투지 않고 해로움을 피하려 했다 말할 수 있겠다.

” 촉한나라의 소열황제(유비)가 죽을 때 후주(유선)에게 조칙을 내려서 말하였다.

“선이 작다고 해서 아니 하지 말며(勿以善小而不爲), 악이 작다고 해서 하지 말라(勿以惡小而爲)” 유약한 유선을 제갈공명에서 맡기며 유비는 작은 악이라도 행하지 말며, 작은 선이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유비는 비록 좌절 할 때에도 신의에 더욱 밝았고, 형세가 긴급하고 일이 위태로워도 도(道)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혼란했던 시기에 실패할 줄을 알면서 대의(大義)를 생각하고 기꺼이 선택할 수 있겠는가. 결국 승리가 유비에게 있지 않았던 것처럼 유비의 인의 역시 난세를 해결하는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곧 유비의 명성을 일으킨 것이 그의 인의였다면, 대세를 그르치게 한 것도 인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기만에 빠지는 순간, 작은 선행은 눈에 띄지 않을 것이므로 실천하지 않고, 또한 작은 악행은 눈에 보이 않을 것이므로 눈감고 만다.

타인의 눈을 속일 수 없다.

안보는 듯해도 어디선가 지켜보는 눈이 있다.

한 때의 이익으로 지금은 성공하고 편한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결국 앞날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