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규의 한국성씨를 찾아서? - 인동장씨(仁同張氏)
정복규의 한국성씨를 찾아서? - 인동장씨(仁同張氏)
  • 정복규
  • 승인 2011.08.3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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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고려때 상장군 장금용계와 직제학 장계계로 나눠
‘시일야방성대곡’의 장지연, 장면, 장욱진 화백 등이 후손


인동장씨는 상장군 장금용(張金用)계, 직제학 장계(張桂)계로 나뉜다.

장금용은 고려 때 삼중대광 신호위 상장군을 역임했다.

그의 아들인 장선(張善)이 1072년(고려 문종 26년) 금오위 상장군에 올랐다.

그 뒤 후손들이 옥산(玉山)에 정착하여 살면서 옥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장두광은 선조 28년 학문과 덕행으로 천거됐으나 인동 향리에 묻혀 성리학 연구에 몰두했다.

그의 독자적 성리학설은 일본, 중국에서도 연구되고 있다.

장태수(1841~1910)는 경술국치 때 전북 김제시 금구면 상신리에서 27일간 단식으로 항거하다가 순국했다.

장지연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시일야방성대곡’이란 사설로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장면(1899-1966)은 4.19혁명으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로 선출되었으나 5.16혁명으로 9개월 만에 실각했다.

장택상은 미군정 때 수도경찰청장, 초대 외무부장관, 3대 국무총리,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했으며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인물로 유명하다.

장준하(1918-1975)는 박정희와 역사의 라이벌로 유명하다.

그는 해방 후 잡지‘사상계’를 통해 공화당 정부의 부정을 과감하게 알렸으며 막사이사이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75년 의문사로 숨졌다.

장도영(1923~)은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났으며 일본에서 동양대학과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모교인 신의주동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서울로 내려와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했다.

1948년 여순 반란사건 당시 박정희가 무기징역을 받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제2공화국 출범 이후 장면 국무총리에 의해 발탁되어 육군참모총장으로 재직했다.

박정희 소장이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자 모호한 태도를 보여 정변을 방조했다는 의혹이 있었으나 본인은 동조세력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 뒤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계엄사령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내각수반, 국방부장관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반혁명’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형집행 면제로 풀려났다.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 웨스턴미시간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1년 현재 미국 플로리다에 생존해 있으며 치매로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영은 한국은행 부총재, 한국일보 사장,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대한체육회 회장, I.O.C위원 등을 역임했다.

인동장씨는 각계에 수많은 인사를 배출했다.

▲장왕록(전 서울대교수) ▲장덕진(전 국회의원, 농수산부장관) ▲장기욱(전 국회의원) ▲장충식(전 국회의원) ▲장강재(한국일보사장) ▲장충식(전 단국대총장) ▲장두성(언론인) ▲장동식(전 치안국장, 국회의원) ▲장수철(동요시인) ▲장명수(전 전북대총장) ▲장성만(전 국회의원) ▲장기준(전 중소기업은행장) ▲장경순(전 국회부의장) ▲장원찬(변호사) ▲장두건(화가) ▲장현태(변호사) ▲장욱진(화가)씨 등이 후손이다.

(무순) 집성촌은 경북 구미시 인동동을 꼽는다.

시조 장금용이 고려 초 터를 잡은 이래 38대를 내려오면서 한 때는 인근에 2천여호가 살았다.

본관 인동은 경북 구미시 인동동의 지명이며 소재지는 구미시 인의동(仁義洞)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310명이 있다.

인구는 2000년 현재 591,315명이다.

서울 118,610명, 부산 48,410명, 대구 42,393명, 인천 31,813명, 광주 15,162명, 대전 14,176명, 울산 14,234명, 경기 110,669명, 강원 18,586명, 충북 19,175명, 충남 20,837명, 전북 21,543명, 전남 28,750명, 경북 45,770명, 경남 35,027명, 제주 6,160명이다.

옥산장씨(玉山張氏)는 2000년 현재 2,005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