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민투련' 공동의장 역임… 20여년 간 언론인 길 걸어
지역 내에선 '형두캔두'로 불려… "'문제 해결' 뜻 담겨있다"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불러 달라." 최형두(경남 마산합포) 국민의힘 의원은 보수 진영에서 보기 드문 학생운동권 출신이지만 좌우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 중도 세력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지난 21대 총선 당시 경남 최다선인 5선의 이주영 의원 이후 14년 만에 세대교체를 이뤄낸 정치인이기도 하다.
최 의원은 서울대 사회학과 시절 1984년 대학 운동권의 핵심이던 '전국민주화투쟁 학생연합'(민투련)의 공동의장이었다.
당시를 그는 "지금 시대와 참 비교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며 "앞장서서 말하기 좋아하고 그러다보니 학생운동의 주류에 끼어들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도 내재돼 있던 3·15의거를 일으킨 마산의 DNA라고 설명한다. 그는 국회 입성 후 '3.15 의거 참여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3.15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학생운동 당시 민정당사에서 정치적 해금, 민주적 기본권 회복을 요구하는 농성을 주도해 지명 수배로 3년여를 쫓겨 다녔고 1987년 구속 수감되기도 했다. 1988년 2월 노태우 대통령 취임과 함께 사면복권됐다.
그는 이 때를 "합리적 자유우파로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고 회상한다.
이 당시 언론의 역할을 가까이서 봤던 그는 대학 졸업 후 문화일보 기자로 입사해 정치부 기자, 워싱턴특파원, 논설위원 등을 거치며 20여년 간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앞서 문재인 정부 때에는 국회 문화체육위원회 소속으로서 언론사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최대 5배 이상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에 가장 앞장서 투쟁해 입법을 막아내기도 했다.
2012년 김황식 총리에 의해 국무총리실 공보실장(대변인)으로 임명되면서 공직에 발을 들였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내다가, 2014년 김황식 전 총리가 서울시장 경선에 출마하자 사직하고 경선 캠프에 합류했다. 그 후 19대 후반기 국회 대변인을 역임했다.
현재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으로서 산업발전, 세계공급망 위기를 극복할 에너지 주권 확립, 코로나 팬데믹 터널을 막 벗어난 중소상공인들 생업을 위한 지원방안 등을 강구하고 있다.
최 의원은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초선 같지 않은 초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역 내에서는 '형두캔두'로 불린다. 선거 당시 캠프에서 만든 캐치프레이즈인데, 자신의 이름을 '네글자'로 알고 있는 유권자들이 많다고 한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정치인은 지역 유권자와 친밀감과 유대감을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성공적"이라며 "최형두는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설명한다.
[신아일보] 김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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