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관(前官)' 보고 '현장'도 봐야
[기자수첩] '전관(前官)' 보고 '현장'도 봐야
  • 서종규 기자
  • 승인 2023.09.0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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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前官禮遇). 사전적 의미로 '장관급 이상의 고위 관직에 있었던 사람에게 퇴임 후에도 재임 때와 같은 예우를 베푸는 일'이다. 정치권이나 법조계에서 많이 언급되던 '전관'이 명확한 기준도 없이 공공건설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에 이어 불거진 전단보강철근 누락 사태에 대해 정부가 전관을 겨냥 중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공공주택 설계와 공사 등을 전관 업체가 다수 수주하고 있고 제대로 된 업무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전관에 대한 예우로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연일 전관 카르텔 혁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다.

원희룡 장관은 "LH가 강도 높은 수술을 감수해야 한다"와 "후배들을 유착으로 이끌며 미래 세대 기회를 빼앗는 세대적 약탈행위" 등 강한 발언을 이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건설·부동산 분야 전문가들은 전관 카르텔 혁파를 공공주택 부실공사 근절의 근본적인 방안으로 보지 않았다. 전관 업체가 담합 등을 통해 일감을 수주하는 것은 문제일 수 있지만 현장 부실시공 원인은 현장에서 직접 찾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자세하게는 현장에서 이뤄지는 설계와 시공, 감리 등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하고 서로를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된 작업이 이뤄지기 위해 일에 대한 숙련도가 떨어지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근로자를 줄여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국토부가 LH 출신 전관이 있는 업체에 대한 계약 참여 자체를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것을 두고는 주택 공급 정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설계와 감리 분야에 LH 퇴직자가 일하고 있는 업체가 많은데 문제가 있는 전관과 그렇지 않은 전관을 모조리 사업에서 배제하는 건 맞지 않다는 견해다. 공공주택 공급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LH 발주 공공주택 설계를 수행하는 건축사사무소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설계 심사위원이 100% LH 외부 인사로 구성된 상황에 전관이 어떻게 힘을 쓸 수 있겠나?"라며 하소연 한다. 사실상 업무의 첫 단계인 수주 과정에서 전관이 힘을 발휘하기가 어려운 만큼 단순히 전관이 몸담고 있다는 이유로 계약 참여를 배제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공정한 경쟁을 통한 공공주택 품질 제고를 위해 전관 업체 간 담합 등 부정행위는 척결할 필요가 있다. 다만 자칫 전관에만 집중하면 실제 현장 개선이라는 중요한 부문을 놓칠 수 있다.

전관 문제 개선을 위한 대책과 현장 역량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모두 필요한 때다.

seojk0523@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