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우의 여의도노트] '보복범죄' 막지 못하는 민사소송법, 서둘러 보완해야"
[진현우의 여의도노트] '보복범죄' 막지 못하는 민사소송법, 서둘러 보완해야"
  • 진현우 기자
  • 승인 2023.06.1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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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기록 '비실명 처리' 가능한 형사소송
민사소송, 피해자 보호 장치 사실상 없어
보복범죄, 해가 갈수록 급격한 증가 추세
지난 2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 법원종합청사에서 돌려차기 사건 피고인 A씨가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 받은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 법원종합청사에서 돌려차기 사건 피고인 A씨가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 받은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과 정부가 16일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남 사건’과 관련 신상공개 확대 등 관련 후속 조치를 논의했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이날 “특히 제일 관심이 있는 부분이 신상공개"라고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 남성이 '출소하면 대놓고 보복하겠다'고 전한 것이 알려지며 피해자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소지 등 인적사항을 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법조계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소 등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현행 민사소송법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법정책연구원이 지난 2020년 내놓은 '민사소송 및 집행 절차에서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연구' 보고서 (제공=사법정책연구원)
사법정책연구원이 지난 2020년 내놓은 '민사소송 및 집행 절차에서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연구' 보고서 (제공=사법정책연구원)

◆가해자에 노출된 피해자 신상정보... 허술한 민사소송법

형사소송의 경우 사건관계인의 생명 또는 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재판기록에 대한 비실명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민사소송의 경우 그런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피의자로부터 보복에 노출될 수 있는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지 못하고 있다. 

보통 강력 사건 피해자는 형사소송과 함께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를 청구하기 위해 민사소송도 병행한다. 하지만 이름, 주소, 주민번호 앞자리 등이 포함된 소송기록을 열람 또는 복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민사소송법 162조에 따라 피해자의 신상정보는 가해자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번 ‘부산 돌려차기남 사건’ 피해자는 자신의 신상정보가 포함된 민사 판결문이 가해자에게 보내진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핸드폰 번호를 10번 넘게 바꾸고 개명까지 했다”고 말했지만 보복범죄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아직도 주민센터가서 소송 대리인이나 당사자가 최근에 전입신고된 주소지를 떼볼 수가 있다”며 “보복범죄 여지는 굉장히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경찰청에 따르면 보복범죄는 해가 지날수록 점차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8년엔 268건이었던 것이 2021년엔 434건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처럼 보복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는 점차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받기 위한 민사소송 병행을 포기하게 된다. 지난 2019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피해자 25명 중 단 1명만 이른바 '박사' 조주빈 일당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도 주소가 가해자에게 공개돼 보복범죄를 우려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민사소송법 개정안... 소위조차 못 넘어

그렇다면 입법을 책임지는 국회 움직임은 어떨까? 지난 20대 국회부터 보복범죄 등을 예방하기 위해 피고발인의 개인정보 열람을 제한하는 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회엔 지난 2020년, 2021년에 이어 올해 2월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법제사법위원회)이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할 시 인적사항을 노출하지 않도록 하는 ‘민사소송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황이다.

김 의원은 발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성폭행 피해자가 신상정보 노출로 소 제기를 망설이는 폐단은 제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법안을 비롯해 대부분 법안 심사 후순위로 밀려 법안소위 문턱조차 못 넘고 있다. 김영배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국회부터 민사소송법 개정안 논의가 지지부진해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올해 2월 다시 개정안을 제출했다”며 “논의가 후순위로 밀린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가해자가 쉽게 개인정보를 접근할 수 있는 불합리한 상황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돌려차기남이 등장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민사소송의 경우 기본적으로 상대를 특정해가지고 소를 제기하기 때문에 더욱 촘촘한 보완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접근금지 가처분 제도’가 있지만 실제 판결까지 시간이 걸리는 문제고 근본적으로 피해자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며 “개인정보 열람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도 “제도적인 보완책이 분명히 필요한 상황에서 후순위로 밀려 국회에서 그냥 잠자고 있다라고 하면 이건 정말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의 현실을 너무 외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조서 자체를 가명으로 받거나 재판 기록에서 인적사항을 도려내 전달할 수 있도록 빠른 시일내 규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hwji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