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 '반성' 등 표현 없는 이례적인 3·1절 기념사
한일정상회담 등 의식한 듯… 美 "이 비전 지지한다"
野 "정상적 관계개선 없다" "이완용 발언과 궤 같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미래를 위한 협력 파트너’로 규정하며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윤 대통령이 일본과의 연대를 강조한 것은 북한의 핵 위협 앞에서 한·미·일 3국의 안보 공조가 절실하다는 현실 인식과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 ‘강제징용 피해 배상’ 협상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 개최 가능성이 점쳐지는 한·일정상회담의 진척 상황도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해 당장 미국과 일본은 환영의 입장을 나타냈다. 미국 국무부는 1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해 "우리는 이 비전을 매우 지지한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일 사설에서 "윤 대통령이 굳이 일본과 협력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설명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고, 요미우리 신문은 "윤 대통령이 일본을 '파트너'로 규정하면서 한일 간 역사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던 역대 정권의 대일 자세에서의 전환을 확인시켰다"라고 평가했다.
실제 그간 역대 대통령들은 3·1절 기념사를 통해 보수 진보 등 성향을 가리지 않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강조하면서도 '과거사', '역사 인식', '사죄', '반성' 등의 표현을 써가며 일본의 전향적 태도를 촉구해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역사의 진실을 결코 외면해선 안된다”고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이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인권 범죄 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다"면서 일본 정부를 가해자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기 보다 미래 지향적인 협력에 방점을 찍으면서 오히려 일본에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성의를 보여준 대신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 측에 공을 넘긴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일본의 전향적 태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강제징용, 위안부 등 구체적인 과거사 현안을 언급하지 않고 너무나 장밋빛 미래만 제시하며 너무 앞서나간 것 아니냐는 비판적 의견도 나온다.
당장 민주당과 야권,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대일 굴종외교?저자세 외교’라며 맹렬히 비난하고 나섰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일본 굴종 외교만 재확인한 셈"이라며 "일본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머리 숙이는 비굴한 외교로는 정상적 관계 개선이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도 "'우리는 힘이 없으니 일본 덕을 보는 게 맞다'고 주장한 매국노 이완용 발언과 윤 대통령의 발언은 그 인식의 궤가 같다"고 비난했다.
현재 한일 외교당국은 징용 배상 해법을 놓고 줄다리기 협상중이다.
우리 정부는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피해배상금을 지급하고, 재원은 한일 양국 기업 등에서 충당하는 제3자 변제안을 제시한 상태다. 하지만 양국은 일본 기업들의 배상금 재원 조성 참여 및 사과 등을 놓고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해결될 경우 오는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초청 이전에 윤 대통령의 방일이 성사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신아일보] 김가애 기자
gakim@shinailbo.co.kr
저작권자 © 신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