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장렬히 산화한 8인의 호국영웅이 영면에 들어갔다. 육군은 20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안장식을 엄수했다.
5구의 유해가 안장된 대전현충원 합동안장식은 박정환(대장)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유가족, 국방부와 보훈단체 관계자, 장병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같은 시간 서울현충원에서도 김규하(중장) 수도방위사령관 주관으로 합동안장식이 열려 호국영웅 3분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행사는 국기·고인에 대한 경례, 조사, 종교의식, 헌화·분향, 조총 및 묵념, 영현 봉송 순으로 진행됐다. 8인의 호국영웅 중 이날 대전현충원에서 영면에 들어간 유해는 故 김용일 이등중사(현계급병장), 故 송병선·편귀만 하사(현계급상병), 故 장기수·정준언 일병 등 5구다. 故 양범석·윤의생·강농원 일병 등 3구의 유해는 유가족 요청에 따라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고인들의 신원은 발굴 이후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한 유가족의 정보를 통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확인했다. 이날 영면에 든 故 김용일 이등중사와 편귀만 하사는 9사단 30연대 소속으로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했다 목숨을 잃었다. 고인들의 유해는 올해 7월,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인 백마고지 일대 참호 속에서 함께 발굴됐다.
김 이등중사는 1932년 충북 괴산에서 6남 6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2년 21살에 입대하여 6·25전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로 꼽히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했다. 오랜 시간 홀로 자녀를 키우며 남편을 기다려온 배우자 유인득 씨는 1998년에 생을 마감하고 홀로 고향에 묻혀 있었으나 이번 합동안장식 간에 부부합장으로 영원히 함께하게 됐다.
편 하사는 1925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5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내의 뱃속에 막내딸이 자라고 있던 1952년 6월 입대해 백마고지 전투에 투입됐으며, 끝내 딸의 출생을 보지 못한 채 전사했다. 고인의 딸 편정숙 씨는 “아버지를 한 번만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기적을 만든 것 같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故 송병선 하사는 6·25전쟁 당시 7사단 3연대 소속으로 참전하여 ‘평창지구(하진부리 부근) 전투’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2020년 강원도 평창의 무명고지에서 발굴됐다.
송 하사는 1924년 인천광역시 옹진군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15세가 되던 해에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돌을 갓 넘긴 딸과 가족을 뒤로한 채 입대해 하진부리 부근 전투에서 전사했다. 1954년 고인에게 추서됐으나 전달되지 못했던 화랑무공훈장은 68년 만에 유가족에게 전수됐다.
故 장기수 일병은 6·25전쟁 중 가장 앞장서서 38선을 돌파한 ‘38선-원산 외곽선 진격작전’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2020년 강원도 양양의 무명고지에서 발굴됐다.
장 일병은 1924년 경북 안동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944년 결혼,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피란 중에 입대, 3사단에 배치되어 그해 11월 27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남편이 언젠가 돌아오리라 믿고 평생을 기다리다 4년 전 91세의 나이로 작고한 아내 임복순 씨는 이번 행사에서 부부합장으로 남편과 재회하게 됐다.
故 정준언 일병은 6·25전쟁 당시 9사단 소속으로 참전하여 ‘춘천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2012년 강원도 춘천의 무명고지에서 발굴됐다.
정 일병은 1930년 경남 거제에서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일찍이 작고한 부친을 대신해 가족들을 부양했다. 1950년 낙동강 방어전이 한창일 때 입대한 고인은 총 쏘는 방법만 훈련받고 전장에 배치됐다. 고인의 유해는 2012년 발굴됐으나 당시 유전자 분석 기술로는 신원확인에 한계가 있었다. 이후 10년이 지난 올해 4월, 최신 유전자 분석 기법으로 유가족과의 형제 관계가 확인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故 양범석 일병은 6·25전쟁 당시 8사단 16연대 소속으로 참전하여 ‘노전평 전투’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올해 5월, 강원도 인제의 무명고지에서 발굴됐다. 양 일병은 1923년 경기 김포에서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세 자녀를 남겨두고 1951년 1월, 29세의 나이에 입대해 그해 8월에 전사했다. 고인의 딸 양금란 씨는 “오랜 기다림 끝에 아버지를 만날 수 있어 감격스럽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과 같은 비극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故 윤의생 일병은 6·25전쟁 당시 육군 직할 소속으로 참전하여 ‘춘천-화천 진격전투’ 간에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2010년 강원도 화천의 무명고지에서 발굴됐다. 윤 일병은 1932년 경북 문경에서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6·25전쟁 직후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진 입대했다. 함께 입대했던 친구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윤 일병만 19세의 어린 나이로 전사했고 70여 년만에 그리운 가족에게 돌아오게 됐다.
故 강농원 일병은 6·25전쟁 당시 3사단 23연대 소속으로 참전하여 ‘한석산-가리봉 전투’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유해는 2020년 강원도 인제의 무명고지에서 발굴됐다. 강 일병은 1929년 인천 영흥도에서 6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1951년 3월에 입대하였고 그해 23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아들 강한표 씨는 “70여년 간 기다렸던 아버지를 찾았다는 소식에 반가운 한편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1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은 조사에서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여기 계신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졌다”며 “육군은 영웅들의 숭고한 사명을 이어받아 어떠한 적의 도발과 침략도 강한 힘으로 맞서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육군은 올해 6·25전쟁 전사자 20분의 안장식을 거행하는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에게 최고의 존경과 예우를 다하고 있다.
[신아일보] 허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