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냉·온 반복되는 한일관계… 얽힌 실타래 풀릴까
[창간특집] 냉·온 반복되는 한일관계… 얽힌 실타래 풀릴까
  • 한성원·권나연 기자
  • 승인 2021.06.0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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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한일 외교수장의 첫 만남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한일관계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위안부·강제징용 판결 등 과거사 문제에서부터 일본의 후쿠오카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 결정에 따른 날 선 공방까지 한일관계는 역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잊을 만하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독도 영유권 문제는 꼬일 대로 꼬인 한일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한일관계가 이대로 머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다.

 

(사진=아이클릭아트)

 

# 한일 외교수장 첫 만남… 대화재개 의미는

최근 한국과 일본의 외교수장이 1년3개월 만에 대화의 장에 마주 앉았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5월5일(현지시간)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 참석차 방문한 영국 런던에서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 대면회의를 가진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서울중앙지법의 위안부 판결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으로 한일 관계가 냉각된 시점에서 성사돼 새로운 해법 모색에 대한 기대를 모았다. 특히, 정 장관이 지난 2월 취임한 후 처음으로 이뤄진 한일 외교 정상회담이라는 점에서 관계 개선에 대한 긍정적인 성과를 기대하게 했다.

회담에서는 △북한·북핵 문제 공동 대응 및 한반도 정세 평가 △강제징용·위안부 과거사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 등이 다뤄졌지만, 원론적인 대화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 측은 △위안부 소송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 △일본 기업 자산매각을 통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불가 방침 등을 전달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 일본 측의 올바른 역사인식 없이는 과거사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과 관련해서도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했으며, 북한·북핵 문제 공동 대응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해법 없이 지속적인 협력만 다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은 “양 장관은 한일 간 현안 해결과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양국 간 긴밀한 대화와 소통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해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 영욕의 역사… 한일관계 뒤흔든 그때 그 사건

한일 관계는 조선시대 일본의 식민 지배와 그 과정에서 자행된 인권 유린을 비롯해 독도 영유권 문제 등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특히, 일제의 징용이나 징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양국 국민들의 대립은 1965년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 관계에 관한 조약’으로 평행선을 달리는 모양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국민들의 동의 없이 청구권 3억 달러와 경제 차관 2억 달러를 지원받는 대신 식민 지배의 피해에 대한 모든 배상을 포기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과거사를 사과 받지 못했다”는 한국 국민들과 “이미 모든 배상이 마무리됐다”는 일본 국민들의 입장 차이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일본이 과거사를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한일관계가 우호적이었던 순간도 있다. 1993년 8월4일 고노담화와 1995년 8월5일 일본의 전후 50주년 종전기념일을 맞아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가 그것이다.

1991년 8월14일 故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생존자 중 세계 최초로 피해 사실을 증언하면서 국제여론이 들끓자,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은 1993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과 군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는 뜻을 전했다.

무라야마 담화에서 일본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며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의 뜻을 표했다. 이는 외교적으로 일본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죄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2018년 10월30일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 한일관계는 다시 냉각기를 맞았다.

이 판결 후 일본은 연일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냈고, 급기야 2019년 7월1일 한국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치에 사용되는 소재의 수출 제한을 발표하면서 경제보복에 나섰다. 이에 한국 국민들이 일본 여행자제와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맞서면서, 과거사로 촉발된 갈등이 대대적인 무역 분쟁으로 이어진 바 있다.

 

# 독도·오염수… 한일관계 가늠할 ‘뜨거운 감자’

최근에는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홈페이지의 지도에 일본 영토처럼 표시한 독도를 삭제하라는 한국 정부 측 요구를 거부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일본은 도쿄올림픽 성화 봉송 코스를 소개하는 전국 지도에서 시마네현 위쪽에 점을 찍어 독도가 마치 일본 땅인 것처럼 표시했다. 이를 두고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 등의 항의가 빗발치자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독도가 보이지 않게 조치하는 듯했다. 하지만 화면을 확대해 보면 여전히 독도 위치에 작은 점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우리 정부가 독도를 일본 영토처럼 표시한 도쿄올림픽 지도를 시정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지도를 수정하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가 도쿄올림픽을 ‘보이콧’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도쿄올림픽 조직위가 독도 일본 땅 표기를 강행할 시 올림픽 불참을 선언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와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 결정도 향후 한일관계를 가늠할 ‘뜨거운 감자’다.

지난 4월13일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각료회의에서 인근 국가의 방사능 오염수 피해보다는 국가 경제적 관점에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저장돼 있는 오염수를 2023년부터 최소 30년간 해양으로 방류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주민들과 어민, 시민단체들조차도 해당 결정에 대해 반발했고, 주변국인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강한 비판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정확한 정보공개 요구에도 현재 응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원전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확한 정보교환, 오염수방류 영향 감시, 적절한 조치 강구 등에 대해서도 일체 한국 정부와 협의를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적 해결 외에도 국제해양법재판소 중재재판 제소 및 동 재판소 잠정조치를 포함해 법적 해결에 대해서 치밀한 검토를 지시했다.

 

# 가깝고도 먼 일본… 우리의 대응은

한국경제연구원의 여론조사에서 한일 양국의 상호 호감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국민의 경우 ‘비호감’과 ‘매우 비호감’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48.1%로 ‘호감’과 ‘매우 호감’ 응답 비율인 16.7%의 두 배를 넘었고,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특이한 점은 한국과 일본 국민의 78%와 64.7%가 “양국 정부가 향후 협력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한일관계는 역대 최악의 상황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정치적·경제적 관점에서 협력의 필요성을 외면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적으로는 정권 유지 및 정권 재창출을 위해 지지 기반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는 양국의 현 집권 세력이 협력의 필요성을 애써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양국의 경제력 및 국력 차이가 예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더 이상 상대국에 대해 위축되거나 배려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 인접성, 산업 구조의 보완성, 문화적 유사성 등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 또한 자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축’을 위해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논의하면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발전시킨다는 투트랙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한일관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해온 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양국이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중국과 갈등을 회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불확실한 동북아 정세 속에서 서로에 대한 가치와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의지를 보여야 할 때다.

[신아일보] 한성원·권나연 기자

swha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