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vs위법 줄다리기…기존 업계·스타트업 싸움 붙이는 '애매한 정책'
혁신vs위법 줄다리기…기존 업계·스타트업 싸움 붙이는 '애매한 정책'
  • 이지은 기자
  • 승인 2020.09.1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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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로 촉발된 갈등 감정평가·의약 등 업권 가리지 않고 확산
기술 발전 못 따라가는 '법'·근거 약한 육성 '정책' 성장 발목 잡아
(왼쪽부터) (자료=해당 누리집)
(왼쪽부터)빅밸류와 타다, 네이버 엑스퍼트, 배달약국 누리집 이미지. (자료=각 누리집)

기술과 서비스의 발달과 함께 전 산업군에 걸쳐 '혁신'을 내건 스타트업의 성장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신규 기업과 기존 업계 간 공존이 새로운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초단기 렌터카를 표방하며 등장한 '타다'에서 촉발된 신·구 갈등은 부동산과 의료, 법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혁신'이 앞으로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것처럼 홍보하는 정부지만, 제도 개선이나 이해 당사자 간 갈등 조율에는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14일 한국감정평가사협회(이하 감평협)에 따르면, 감평협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연립·다세대 주택 시세정보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빅밸류'를 지난 5월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이하 감정평가법) 위반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빅밸류는 금융위원회로부터 금융회사의 핵심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지정대리인'과 규제샌드박스(규제 유예)를 적용받는 '혁신금융서비스'에 지정되는 등 정부로부터 서비스 혁신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감정평가업계는 빅밸류가 감정평가법인이 아님에도 감정평가업을 하고 있다며 감정평가법 위반을 주장했다.

금융위는 국토교통부의 의견을 들어 빅밸류 서비스가 적법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기존 업계에서 보는 시각은 달랐다. 감평협은 여러 법무법인의 법률 검토에서도 위법성이 인정됐다며, 고발 배경을 설명했다. 물론, 빅밸류는 적법성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인정한 서비스를 두고 업계에서는 생존권을 둔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감평협 관계자는 "업무영역에 대한 침해문제가 있다. 조치방법은 법률적인 검토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기존업계와 어떻게 조화롭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ICT 규제 샌드박스 누리집 이미지. (자료=ICT 규제 샌드박스 누리집)
ICT 규제 샌드박스 누리집 이미지. (자료=ICT 규제 샌드박스 누리집)

혁신 서비스를 앞세운 스타트업이 기존 업계와 갈등을 겪은 사례는 비일비재다. 초단기 렌터카를 표방한 '타다'는 이런 갈등의 상징적인 존재다. 작년 2월 서울개인택시조합 전·현직 간부들은 타다 서비스와 관련해 쏘카의 이재웅 대표와 VCNC 박재욱 VCNC 대표를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1심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그 사이 국회에서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이른바 '타다 금지법'이 발의돼 지난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결국 타다 서비스는 지난 4월 종료됐다.

일련의 과정에서 국토부는 타다 서비스가 합법인지 불법인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해 비판을 받기도 했고, 검찰이 이재웅 대표를 기소한 것을 두고 "무리한 기소"라며 정부 인사들이 검찰을 탓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의약품을 배달하는 서비스인 '배달약국'은 합법성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가 지난 8일 보건소로부터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고 서비스를 중단했다. 스타트업 '닥터가이드'가 개발한 배달약국은 의·약대생이 만든 의약품 수령 배달 플랫폼으로, 앱으로 처방전을 전송해 결제하면 직접 약국에 방문하지 않고 약을 받아 볼 수 있는 서비스다. 

이에 대한약사회는 의약품 대리수령과 배달서비스는 명백한 약사법 위반행위라는 입장이었고, 닥터가이드는 법률 대리인 자문과 보건소, 복건복지부를 통해 위법하지 않다는 해석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이 운영하는 K-스타트업 창업 포털. (자료=K-스타트업 누리집)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이 운영하는 K-스타트업 창업 포털. (자료=K-스타트업 누리집)

기존 업권에서는 정부가 혁신이라는 이름을 빌미로 스타트업이 기존 법 체계에 혼란을 가져오는 것을 방치한다고 주장한다.

의약업계 한 관계자는 "이런 충돌들이 그냥 넘어갈 경우, 아무나 의료행위나 법률행위 해도 된다는 것이 된다"며 "업계에서 어떤 사고 발생 시, 기존 업계의 경우 엄격하게 관련 법으로 처벌받지만, 스타트업 등은 그 기준이 미비해 앞으로 관련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스타트업들은 새로운 서비스나 아이디어가 성장할 수 있는 제도가 미비하다고 하소연한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저희 같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서비스들을 개발하고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많이 있다"며 "앞으로 이런 문제들이 잘 해결돼야 이후에도 많은 스타트업이나 서비스, 아이디어가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산업 구조와 제도는 여전히 스타트업과 기존 업계가 함께 성장하는 데 한계를 가진다고 지적한다.

권혁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전략팀장은 "미국은 정책적으로 우리나라와 다르게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예외·사후적으로 금지하거나 제재하는 방식 취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가 반대로 돼 있다"며 "우리나라는 특정 허가를 취득해야만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새로운 기업이나 산업들이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스타트업과 기존 업계 간 갈등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각도로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정책 관계자는 "기존 사업, 신사업과 관련한 의견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 지원과 함께 그런 규제 등을 발굴해서 개선될 수 있게끔 관련 부처와 협의를 진행하는 등을 지속하고 있다"며 "앞으로 '타다'와 유사한 일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거론되는 문제들이 빠르게 개선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며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zi@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