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김기춘·조윤선 '문화계 블랙리스트' 재판 다시"
대법 "김기춘·조윤선 '문화계 블랙리스트' 재판 다시"
  • 박선하 기자
  • 승인 2020.01.3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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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남용'은 인정…'의무없는 일' 여부는 다시 따져야"
직권남용죄 기준 제시…박근혜·양승태 등 재판도 영향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직권남용죄에서 적용 범위에 대한 엄격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의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직권남용죄'의 적용 범위를 좁힐 것을 지시했다.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점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형법 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한다.

먼저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정부 지원금을 신청한 개인 또는 단체의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각종 사업에서 정부의 지원을 배제하도록 지시한 것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이 각종 명단을 송부하게 한 행위 등을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원심의 유죄 판단에는 법리오해와 심리미진의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직권남용 행위의 지시를 받는 쪽이 공무원이거나 공공기관 임직원인 경우에는 법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지위에 있다"면서 "이러한 경우에는 어떠한 일을 한 것이 의무 없는 일인지 여부는 관계 법령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기관의 의사결정과 집행은 서로 간 협조를 거쳐 이뤄지는 게 통상적인데, 이러한 관계에서 일방이 상대방의 요청을 청취하고 협조하는 등의 행위를 법령상 의무 없는 일로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1심은 김 전 실장의 지원배제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조 전 수석도 1심에서는 국회 위증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2심은 김 전 실장의 1급 공무원에 사직을 강요한 혐의를 추가로 유죄로 인정해 1심보다 높은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조 전 수석에 대해서는 지원배제에 관여한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한편, 이번 판결로 대법원은 그간 법조계에서 법적 명확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던 직권남용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내놓게 됐다.

직권남용죄는 조문상 '직권', '남용', '의무' 등 단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탓에 다양한 견해가 제기됐고, 하급심의 유·무죄 판단이 엇갈린 경우도 있었다.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같은 혐의가 적용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신아일보] 박선하 기자

sunh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