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상생 뒤 숨은 ‘복합쇼핑몰’ 규제…오프라인 유통 위기 더한다
[창간특집] 상생 뒤 숨은 ‘복합쇼핑몰’ 규제…오프라인 유통 위기 더한다
  • 박성은 기자
  • 승인 2019.06.0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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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시간 제한·의무휴업 등 유통법 규제로 ‘악화일로’
전통시장은 정체, 온라인쇼핑 급성장…법 취지 ‘무색’
文정부 ‘상생’ 명분 아래 복합쇼핑몰 규제 적극 나서
입점한 ‘영세업자’ 보호 뒷전, 소비자 불편도 무시 못해
복합쇼핑몰 중 하나인 롯데몰 은평점의 외부 전경. (사진=박성은 기자)
복합쇼핑몰 중 하나인 롯데몰 은평점의 외부 전경. (사진=박성은 기자)

지난 2013년 유통산업발전법이 본격 시행된 이후 7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그간 대형유통채널은 의무휴업 등 규제의 덫에 빠져 침체가 지속된 반면에 온라인 시장은 급성장했고, 전통시장은 당초 법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정체다. 이르면 올 하반기 중에 복합쇼핑몰에 대한 규제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여 오프라인 유통 위기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복합쇼핑몰을 비롯한 대형유통채널은 ‘상생’을 앞세운 규제로 부작용은 없는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유통 대표주자’인 대형유통채널이 ‘상생협력’이라는 미명 아래 각종 규제에 부딪혀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를 전제로 영업시간 제한·의무휴업 등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에 발목 잡혀 성장동력을 잃어간 사이, 당초 규제 취지와 달리 전통시장·골목상권이 아닌 온라인 유통채널이 급성장하면서 입지는 더욱 좁아진 상황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타필드, 롯데몰과 같은 복합쇼핑몰까지 입점제한·의무휴업 등의 규제를 더할 움직임이다. ‘상생’이라는 이름 뒤에 대형유통채널이 역차별 받으면서 위기의 낭떠러지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골목상권 보호 ‘유통법’ 취지와 달리 대형유통채널 ‘역차별’
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유통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대형마트는 영업시간 제한과 월 2회 의무휴업에 상권영향평가 기준 상향 조정으로 사실상 신규 출점까지 가로막히는 등 ‘규제 더하기 규제’로 성장이 멈춘 지 오래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대형마트 매출 증감률은 2013년 -5.0%에서 2015년 -2.1%, 2017년 -0.1%, 지난해 -2.3% 등 유통법 시행 때부터 7년째 마이너스 성장이다. 올 1분기 역시 전체 유통업종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세(-3.1%)를 기록했다.

당초 유통법 시행 목적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였다. 시행 7년째인 지금, 전통시장 상황은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온라인 쇼핑몰이 반사이익을 얻으며 매년 두 자릿수의 매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신용카드 사용자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도입 이듬해인 2013년 대형마트 소비 증가율은 29.9%에서 2016년 -6.4%로 급감했다. 전통시장 역시 같은 기간 18.1%에서 -3.3%로 줄었다. 반면에 온라인 채널은 최근 5년간 평균 10% 후반대의 고성장세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간의 상황을 지켜봤을 때 대형마트 규제와 전통시장, 골목상권의 활성화에는 큰 상관관계가 없는 반면 오히려 온라인 채널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고객을 재빠르게 흡수하고 있다”며 “상권영향분석도 올해부터 일반 소매점뿐만 아니라 입점예정업종·동일업종의 모든 사업자를 대상으로 범위가 확대됐고, 절차도 더욱 까다로워져 신규 출점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규제 명분과 설득력은 물론 실익도 얻지 못한 것이 지금의 유통법이며, 대형마트가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복합쇼핑몰 신세계 스타필드 코엑스. (사진=박성은 기자)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복합쇼핑몰 신세계 스타필드 코엑스. (사진=박성은 기자)

◇정부·여당 ‘상생’ 앞세워 올 하반기 복합쇼핑몰 규제 도입 움직임
이런 상황에서도 현 정부와 국회는 ‘상생’과 ‘동반성장’을 앞세워 대형유통채널 규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 국회에 계류 중인 유통법 관련 법안은 16건. 대부분이 상생을 표방한 대형유통채널 규제 중심의 발의다. 특히 대형마트가 수익성 악화를 돌파하기 위한 보루로 여기는 신세계 스타필드·롯데몰과 같은 ‘복합쇼핑몰’에 대한 규제가 많다.

지역 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복합쇼핑몰을 대규모 점포 범위에 포함해 입점을 제한하고, 대형마트·기업형슈퍼마켓(SSM) 등에 적용되는 월 2회 의무휴업 대상으로 지정한다는 것이 골자다.

복합쇼핑몰에 대한 규제는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 중 하나다. 복합쇼핑몰을 대규모 점포로 포함해 규제하는 한편, 입점을 제한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더욱이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에 ‘당정청 을(乙)지키는 민생실천위원회(이하 을지로위원회)’를 열고 올 하반기 중 복합쇼핑몰을 상권영향분석 업종에 포함시켜 입점 제한을 조기에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당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은 “야당 반발로 지연 중인 복합쇼핑몰 규제를 위해서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가능한 것부터 개선하겠다”며 “빠르면 올 하반기부터 복합쇼핑몰 등 대규모 점포 입점을 제한하고, 지역의 중소상인과 합리적인 상생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와 여당이 복합쇼핑몰 규제를 강하게 밀어붙이려는 가운데 여론도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소상공인 500개사를 대상으로 ‘유통법 개정 관련 의견조사’를 한 결과, ‘규제 강화’에 절반이 넘는 55.6%가 찬성했다. 또 유통법 관련 제도 중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응답자의 70% 이상이 ‘복합쇼핑몰의 영업시간 제한·의무휴업 적용’, ‘건축단계 이전 출점여부 결정 위한 절차 마련’을 꼽았다.

다만 규제 강화에 반대한 소상공인들은 ‘대규모 점포 입점 시 주변 소상공인과의 상권 동반 활성화’와 ‘시장원리에 따른 바람직한 자유경쟁’, ‘대규모 점포 입점 제한은 소상공인 생존과 무관’ 등을 반대 근거로 제시했다.

복합쇼핑몰 중 하나인 롯데몰 은평점의 외부 전경. (사진=박성은 기자)
복합쇼핑몰 중 하나인 롯데몰 은평점의 외부 전경. (사진=박성은 기자)
복합쇼핑몰 중 하나인 롯데몰 은평점 내부 모습. (사진=박성은 기자)
복합쇼핑몰 중 하나인 롯데몰 은평점 내부 모습. (사진=박성은 기자)

◇규제 강화 시 소상공인·소비자 편익 초래 ‘부작용’
골목상권 보호라는 명분 아래 복합쇼핑몰 규제를 핵심으로 하는 유통법 개정이 이뤄지면 오프라인 유통채널의 위기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커머스(e-commerce) 채널의 급성장과 ‘초저가’를 앞세운 출혈경쟁으로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복합쇼핑몰은 지금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관련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더는 탈출구를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유통의 추락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 이마트는 지난 2월 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이례적으로 투자설명서를 공개하면서 “유통법 등 최근 유통업계 전반에 대한 정부 규제가 강화돼 신규 출점이 어려워지면서 추가적인 매출 둔화 요인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복합쇼핑몰 규제가 비단 오프라인 유통채널뿐만 아니라 소상공인과 소비자까지 피해가 확대될 우려도 크다는 시각도 있다.

복합쇼핑몰이나 아울렛 등에 입점한 매장의 상당수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신세계 스타필드나 롯데아울렛의 경우 입점 상인의 70% 이상이 소상공인이라는 조사도 있다. 골목상권과 소상공인 보호라는 명분과 달리 현실은 다른 것이다. 특히 복합쇼핑몰 매출은 특성상 평일보다 주말에 집중된다. 이런 상황에서 주 2회 일요일 강제휴무는 소상공인에게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 잠실 롯데월드몰·신세계 하남스타필드·현대백화점 판교몰 등 복합쇼핑몰 3곳에 입점한 소상공인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복합쇼핑몰 규제 법안이 시행될 경우 입점 소상공인의 매출액은 평균 5.1% 감소하고, 사업장 고용도 4.0% 줄일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입점 소상공인 10명 중 8명은 복합쇼핑몰의 영업규제에 반대했다.

유환익 한경연 상무는 “대규모점포 규제에 따른 주변 상권보호 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복합쇼핑몰을 규제할 경우 입점 소상공인의 피해만 초래한다”며 “규제로 매출·고용지표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규제 법안 논의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불편도 쉬이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 복합쇼핑몰은 소비자에게 쇼핑과 외식, 체험·문화시설을 제공하는 ‘편의형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서 지역 대표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례로 ‘지역 맞춤형 라이프센터’ 콘셉트의 신세계 스타필드시티 위례는 키즈존을 내세워 지난해 12월 개장 이후 100일 만에 누적객수 240만명을 돌파했고, 2017년 초 오픈한 롯데몰 은평점은 서울 서북권 30~40대 가족단위 소비자의 호응 속에 개장 100일 만에 500만명을 넘어섰다. 롯데프리미엄아울렛 기흥점 역시 ‘가족형 아울렛’을 내세우며 개장 100일 만에 200만명 방문·1000억 매출을 달성하는 등 복합쇼핑몰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는 무척 높은 상황이다.

롯데몰 은평점에서 만난 40대 남자 A씨는 “거의 매주말마다 어린 자녀들과 복합쇼핑몰에서 외식과 장보기, 놀이체험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우리 같은 가족 고객 대다수는 따로 시간·비용을 들여 자주 여행이나 휴식을 취하기 어려운데, 복합쇼핑몰은 시간·비용 대비 만족도가 높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또한 “매월 두 번 일요일마다 문을 닫는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편함이 무척 클 것 같다”고 덧붙였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