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쏘는 게임' 하면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안 된다?
'총쏘는 게임' 하면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안 된다?
  • 박선하 기자
  • 승인 2019.02.27 16: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산지검, 병역거부 11건에 '온라인 게임 조회' 신청
檢 "베그 등 특정 게임, 폭력적 성향과 연관성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총으로 사람을 쏘거나 적과 전쟁을 하는 게임을 즐기는 것은 신념의 진정성을 떨어뜨리는 사유가 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둘러싼 여론이 팽팽히 갈리고 있는 가운데 검찰 측이 폭력적인 게임을 즐겼는지는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따지는데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어 주목된다.

27일 검찰 등에 따르면 울산지검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11건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담당 재판부에 최근 '온라인 게임 가입과 이용 사실'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을 했다.

울산지검이 조회 대상으로 지목한 게임은 배틀그라운드, 서든어택, 스페셜포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4, 오버워치, 디아블로, 리그오브레전드, 스타크래프트 등 8개다.

이 게임들은 이용자가 사물을 보는 시점에서 총이나 칼을 사용하는 1인칭 슈팅 게임(FPS), 실시간 전략 게임(RTS)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

울산지검은 이들 게임이 ’이용자 상호 간 전투나 경쟁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으로 볼 때 폭력적 성향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울산지검은 법원이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판단하는 데 있어 특정 게임을 즐긴 기록을 참고해 줄 것을 요구했다.

법원도 검찰의 의견을 받아들여 11건의 신청을 모두 수용했다. 이에 8개 게임을 출시한 5개 업체에 병역거부자들의 게임 가입 여부, 가입 시기, 이용 기관과 시간 등을 요청했다.

지난해 말에는 제주지검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병역거부자의 특정 게임 접속 기록을 확인하기도 했다.

검찰과 법원 측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는 "가상 게임과 실제 병역거부 연관 짓는 것은 억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게임을 한다는 것을 개인 양심이나 폭력성향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는 것은 억지스럽다는 이유다.

일각에선 취미생활이자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불과한 만큼 게임이 설정한 가상의 상황을 실제 군사훈련 거부와 연관 지으려는 것은 '무리수'라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검찰은 호기심으로 게임에 한두 번 접속한 정도가 아니라, 잦은 빈도로 폭력적 성향의 게임을 이용할 경우 병역거부의 결격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개인적 양심을 굽혀 자신을 희생해 병역의무를 지는 사람들도 있는 만큼, 게임 이용 여부를 살펴볼 여지는 충분하다고 검찰은 강조하고 있다.

또 특정 종교의 경우 교리상 '폭력적인 성향을 자극하는 게임'을 엄금하고 있음에도 슈팅 게임을 했다면 신앙심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고 검찰은 말한다.

실제로 모 교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교리에는 '폭력, 부도덕, 마법 등 하느님이 미워하시는 것들을 조장하는 게임은 피해야 합니다' 등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울산지검 관계자는 "이용시간, 횟수, 게임 방식 등에 비춰 폭력적 성향이 드러나면 병역거부 사유가 없다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개인적 양심을 굽혀 병역의무를 지는 사람들의 결정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병역거부의 검증은 엄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sunh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