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일본기업, 강제징용 배상하라"…한일관계 긴장 심화
대법 "일본기업, 강제징용 배상하라"…한일관계 긴장 심화
  • 박선하 기자
  • 승인 2018.10.3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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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결 국내효력 없어…신일철주금과 구 일본제철은 같아"
전문가들 "한일관계 냉각 불가피할 듯…신중한 대응 준비해야"
일본 공사현장에서 토목 노동을 하는 강제징용 조선인들. (사진=연합뉴스)
일본 공사현장에서 토목 노동을 하는 강제징용 조선인들. (사진=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소송 제기 후 13년 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대법원의 판결을 두고 일본 정부는 '강경 대응'을 검토할 것으로 전망돼 향후 한·일 외교관계에 긴장이 심화될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2014년 사망한 여운택 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지었다.

대법원 재판부는 일본법원이 회사경리응급조치법을 근거로 원고패소 판결하기 위해 내세운 각종 전제적 판단들이 국내의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원심과 같이 피해배상을 부정한 일본판결은 우리 헌법에 어긋나고,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소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근거로 했다.

또 신일철주금은 가해자인 구 일본제철과 법적으로 동일한 회사이므로 배상책임을 진다는 점도 거듭 확인했다.

가해자인 신일철주금이 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이다.

이번 사건은 1941~1943년 구 일본제철에서 강제노역한 여운택씨와 신천수씨가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강제노역을 이유로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는 내용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일본 오사카지방재판부는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신 일본제철이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사건을 원고 패소 판결 내렸다. 이는 2003년 10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확정됐다.

이후 여씨는 동료 3명과 함께 2005년 한국에서도 소송을 시작했으나, 1·2심 재판부도 "일본법원의 판결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비춰 허용될 수 있다"며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012년 대법원은 일본 재판부의 판결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우리나라 헌법과 충돌한다 점을 이유로 원심을 파기했다.

이에 사건을 다시 심리한 서울고법은 2013년 대법원의 판시를 근거로 신일본제철이 피해자들에 1억 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8년 만에 처음 재판부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

신일본제철은 판결 내용에 강하게 반발하며 재상고했다. 그런데 사건을 다시 넘겨받은 대법원은 피해자와 유족이 빠른 판단을 촉구함에도 불구하고 무려 5년 동안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 같은 대법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박근혜 정부 시절 발생한 사법농단 의혹의 수사 과정에서 실마리가 잡혔다.

검찰 수사 결과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의 고위 간부들은 2013년~2016년 당시의 정부 인사를 수차례 만나 강제징용 소송에 개입을 논의한 정황이 발견됐다.

검찰은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를 위해, 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 등을 위해 일종의 '거래'를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긴 침묵을 깨고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앞선 판결을 그대로 확정지으며 피해자들의 아픔을 달랬다.

한편, 대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외교계에서는 한일관계의 추가 악화가 불가피해 졌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우선 일본은 그동안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문제가 '완전히·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만큼 우리 재판부의 결정을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에 대한 즉각 대응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이날 오후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불러 항의할 방침이다. 한국의 법원 판결을 두고 주일 한국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일본기업들도 자국 정부 방침에 의거해 판결 이행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신일본주금은 판결 즉시 입장문을 내고 "이번 판결은 1965년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견해와 반한다"며 "매우 유감"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일본 정부가 이번 재판을 외교분쟁으로 판단해 강제집행 등의 조치까지 확대해 대응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일본은 한국에 대한 외교 협상 신청을 거쳐 제3국 위원이 포함된 중재위원회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절차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 일본은 한국이 '약속'을 뒤집었다고 국제적 여론전을 펼칠 공산이 크다.

현재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법원 판결을 토대로 어떤 입장을 정할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법원 판결 자체는 사실상 얼마간 예상됐던 부분인 만큼, 이와 별개로 한국 정부의 외교적 대응에 따라 갈등이 진화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우리 정부는 신중한 대응을 예고했다. 외교부는 "정부는 이번 판결이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일 양국이 지혜를 모아야 할 필요성을 일본 측에 전달하고 있다"고 전했다.

sunh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