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소리에 천국에서 춤추겠다"…안중근 의거 109주년
"독립 소리에 천국에서 춤추겠다"…안중근 의거 109주년
  • 박선하 기자
  • 승인 2018.10.2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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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아일보DB)
(사진=신아일보DB)

"내가 죽거든 시체는 우리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반장(返葬)하지 말라.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109년 전 오늘인 1909년 10월26일 만주의 하얼빈역에서는 독립의 염원을 담은 총성과 함께 “대한민국 만세”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당시 총에 맞은 사람은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총을 쏜 사람은 대한독립의 영웅 중 한명인 안중근 의사다.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던 안중근 의사는 치밀하게 거사를 준비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그는 하얼빈 방문을 위해 하얼빈 역 기차에서 내리던 이토를 향해 3발의 총알을 발사했다.

이토는 곧바로 쓰러졌고, 당시 이토를 수행하던 의사는 신속히 응급처치를 했지만 30분 만에 숨졌다.

이후 안중근 의사는 “까레애 우라!” 러시아어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친 뒤 러시아군에게 연행돼 중국 뤼순 감옥에 투옥됐다.

일제는 모진 고문을 시도했다. 안중근 의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을 ‘살인 피고’가 아닌 ‘전쟁 포로’로 취급할 것을 당당히 요구했다.

이어진 재판에서도 안중근 의사는 정연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전 세계에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와 일본의 만행을 낱낱이 폭로했다.

안중근 의사의 관선 변호인 미즈노는 “그 범죄의 동기는 오해에서 나왔다고 할지라도 이토를 죽이지 않으면 한국은 독립할 수 없다는 조국에 대한 적성(赤誠)에서 나온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변론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는 1910년 2월14일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선고를 받은 지 한달 뒤인 1910년 3월26일 여순감옥의 형장에서 31살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26일 오전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9주년 기념식'에서 임수훈 안중근함 대위가 의거의 이유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6일 오전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9주년 기념식'에서 임수훈 안중근함 대위가 의거의 이유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의 의거일인 26일 오전 안중근의사숭모회는 서울 남산 안중근기념사업관에서 의거 109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행사에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과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안중근 의사의 외손녀 황은주 여사, 해군 안중근함 함장 김태훈 대령 등 승조원, 시민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또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는 27일까지 중국 하얼빈에서 의거 109주년을 기념하는 남북 공동행사를 개최한다.

행사에는 안충석·곽동철 신부를 비롯해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등 남측 관계자 90명과 북한 조선종교인협의회 등 북측 관계자 약 10명이 참석한다.

sunh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