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당시 경찰 지휘부, 무리한 작전 감행했다
'용산참사' 당시 경찰 지휘부, 무리한 작전 감행했다
  • 박소연 기자
  • 승인 2018.09.0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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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조사위 결과… 안전장치 없이 "겁먹었냐" 진입 강행
경찰청 이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유남영 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브리핑룸에서 용산참사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찰청 이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유남영 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브리핑룸에서 용산참사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09년 경찰 강제진압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용산참사 당시 경찰 지휘부가 무리한 작전을 감행해 인명피해를 야기했다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5일 이같은 내용의 용산참사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용산 참사는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구 남일당 빌딩에서 재개발 사업 관련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철거민들을 경찰이 강제진압한 사건이다. 진압과정에서 철거민 5명,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하고 철거민과 특공대원 30명이 다쳤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철거민들이 망루 농성을 시작하자 조기 진압과 경찰특공대 투입을 결정하고 진입작전 계획을 세웠다.

작전계획서에는 망루에 시너, 화염병 등 위험물이 많고 농성자들이 분신·투신·자해 등을 할 우려가 있다는 예측에 따라 대형 크레인 2대와 컨테이너, 에어매트, 소방차 등 152개 장비가 적시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현장에 투입된 크레인은 1대뿐이었고, 에어매트는 설치되지 않았다. 소방차는 일반 화재 진압에 쓰이는 펌프차 2대만 투입됐고, 유류로 인한 화재 진압용 화학소방차는 계획서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또 특공대원들은 사전 예행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특공대 진입과 동시에 농성자들이 던진 화염병에 화재가 발생하자 망루가 있던 옥상에 인화성 유증기가 발생했음에도 무리하게 2차 투입을 지시한 사실도 있었다.

당시 경찰특공대 제대장은 계획과 다른 준비상황에 경찰특공대장과 서울청 경비계장에게 작전이 불가능하니 작전을 연기해달라고 건의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특히 서울청 경비계장이 제대장에게 "겁먹어서 못 올라가는 거야? 밑에서 물포로 쏘면 될 것 아냐"라는 발언을 하며 거절했다는 것이 진상조사위의 설명이다.

진상조사위는 "2차 진입 강행은 특공대원과 농성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무리한 작전 수행이었다"며 "1차 진입 후 유증기 등으로 화재 발생 위험이 커진 점 등을 파악해 적절히 지휘해야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건 발생 이후 경찰의 태도에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경찰 지휘부는 전국 사이버 수사요원 900명을 동원해 용산참사와 관련한 인터넷 여론을 분석하고, 경찰 비판 글에 반박 글을 올리는가 하면 각종 여론조사에도 적극 참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상조사위는 이외에도 경찰이 참사 발생 전 철거업체 직원들의 폭력 행사에 적극 대응하지 않은 점, 철거민 사망자 유족에게 사망자 관련 정보나 부검 필요성, 부검 경과 등을 알리지 않은 점 등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경찰 지휘부의 잘못된 지휘로 순직한 경찰특공대원과 사망한 철거민들에게 사과하고, 경찰이 조직적으로 온·오프라인 여론을 조성하는 활동을 금지하라고 경찰청에 권고했다.

또 철거지역 분쟁상황에서 용역 폭력에 대한 예방과 제지 지침 마련, 유족에게 부검 관련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변사사건 처리규칙' 개정, 민생 관련 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경찰관에 대한 치료·회복조치 등도 요구했다.

[신아일보] 박소연 기자

thdus5245@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