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고도 고문 받았는데… 독립유공자 탈락시킨 보훈처
임신하고도 고문 받았는데… 독립유공자 탈락시킨 보훈처
  • 김다인 기자
  • 승인 2018.08.1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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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 가석방' 받은 안맥결 여사… "옥고 기준 3개월 미달"
도산 안창호 선생(왼쪽에서 세 번째)와 조카인 안맥결 여사(왼쪽에서 네 번째)의 생전 모습. (사진=흥사단 제공)
도산 안창호 선생(왼쪽에서 세 번째)와 조카인 안맥결 여사(왼쪽에서 네 번째)의 생전 모습. (사진=흥사단 제공)

만삭의 몸으로 모진 고문을 겪은 뒤 가석방된 독립운동가가 '옥고 3개월'이라는 조건을 채우지 못해 서훈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11일 흥사단에 따르면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는 고(故) 안맥결(1901∼1976) 여사의 유족이 낸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 여사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이자 서울 여자경찰서장을 지낸 인물로 3·1운동에 참여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전원과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펼쳤다.

그러다가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돼 1937년 6월 28일부터 11월 9일까지 종로경찰서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이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고 2개월이 지난 그 해 12월20일 임신 말기로 가석방됐다.

이에 대해 보훈처 공적심사위원회는 최소 3개월 이상의 옥고가 확인돼야 하는 공적심사 기준에 미달해 독립유공자로 포상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안 여사의 유족은 13년째 보훈처의 결정을 뒤집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안 여사의 후손은 "어머니는 임신한 채 5개월간의 혹독한 고문을 버티고 수감생활을 이어가던 중 만삭이 돼 가석방된 것"이라며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옥고기간이 3개월 미만이라며 자격미달이라고 결정한 보훈처의 판단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흥사단은 공적심사 기준과 규정·매뉴얼을 확인하려 보훈처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 거부도 통지받았다.

흥사단 관계자는 "독립유공자를 포상하기 위한 공적심사 기준이나 세칙이 있다면 이를 공개해 논란을 줄이고 시민의 이해를 높여야 한다"며 "포상 내용이나 과정·절차도 국민 누구나 알기 쉽게 안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적심사위는 안 여사의 경우처럼 만삭 여성도 예외 없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임신한 여성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없는 처사"라며 "여성에 대한 별도 기준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흥사단에 따르면 일제 경찰은 3·1 만세시위에 참여해 4만6948명이 체포 혹은 투옥됐다는 기록을 남겼으나 7월 기준 독립유공자 포상자는 1만4849명에 불과하다.

한편, 보훈처는 올해 4월부터 '옥고 3개월 이상' 조건을 폐지하고 포상 기준을 완화할 방침이다.

또 여성 독립운동가의 경우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정황상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인정되는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포상할 예정이다.

보훈처는 "안 여사를 포함해 그동안 기준에 미달해 포상받지 못한 분들을 우선 찾아 서훈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아일보] 김다인 기자

di516@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