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만찬' 이영렬 무죄… 청탁금지법 해석 논란될까
'돈봉투 만찬' 이영렬 무죄… 청탁금지법 해석 논란될까
  • 전호정 기자
  • 승인 2017.12.0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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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봉투 만찬' 관련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돈 봉투 만찬' 관련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른바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후배 검사들에게 위법한 '격려금'을 주고 식사를 제공했다는 이 전 지검장의 혐의에 대해 선배가 후배를 격려한 것으로 보고 사회 상규에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이 전 지검장은 '청탁금지법 위반 1호 검사장'이라는 오명을 피하게 됐다. 다만 이번 선고로 '김영란법' 해석에 대한 논란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 "상급자 격려는 예외사유 해당… 청탁으로 보기 힘들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조의연)는 8일 열린 이 전 지검장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위반 혐의 선고공판에서 "청탁금지법 위반 행위로 보기 힘들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지검장은 현금 100만원과 9만5000원 상당의 식사 등 총 109만5000원의 금품을 제공해 '100만원 초과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벌금 500만원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만찬 식사비가 청탁금지법 8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예외규정'에 해당한다고 봤다. '상급 공직자 등이 위로·격려·포상 등의 목적으로 하급 공직자등에게 제공하는 금품 등'이 수수 금지 금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 조항 3항 1호에 적용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청탁금지법 적용과 관련해 격려·위로·포상 목적으로 제공한 금품인지 여부는 제공자의 의사뿐 아니라 수수자와 제공자의 직무상 관계, 제공된 금품의 종류와 가액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청탁금지법의 입법 취지에 충실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 전 지검장이 본부장이었던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는 올해 4월17일에 수사를 종결했고, 같은 달 21일에 만찬이 있었다"며 "이 자리에서는 '법무부 장관도 부재 중인데 고생이 많았다', '수사하느라 고생했는데 그동안 지원을 못해준 것 같다'는 등의 얘기가 오고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만찬 성격과 경위와 시기, 장소, 비용 결제자금의 원천 등에 비춰보면 피고인이 법무부 과장들에게 위로·격려 목적으로 음식을 제공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이 사건) 음식물은 청탁금지법 예외사유에 해당하므로 수수 금지 금품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법원 "檢 조직상 상하 관계"… 식대·돈봉투 쪼개 판단

재판부는 이 전 지검장이 현장에 있던 법무부 직원들의 상급자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법무부 직제상 검찰국은 일선 검사들이 겸직하고 있고 만찬 자리에 있던 이들도 이 전 지검장을 상급자로 명확히 인식, 상급자와 하급자로 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지검장이 법무부 과장 2명에게 각 100만 원의 격려금을 준 것에 대해서도 "음식물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공소사실, 즉 피고인이 제공한 금전 부분은 그 액수가 각 100만원을 초과하지 않아 청탁금지법에 따른 형사처벌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경우 "단지 수수 금지 금품의 금액이 100만원 이하일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한 조항의 해당 여부가 문제될 뿐"이라며 "결론적으로 검찰의 공소사실은 범죄능력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날 무죄를 선고 받고 법정을 나선 이 전 지검장은 취재진에게 "법원의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는 짧은 소감을 남기고 변호인과 곧장 법원을 빠져나갔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무성한 뒷말 속 면직처분취소 소송 고지 선점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은 청탁금지법 적용의 예외사유에 해당해 이 전 지검장이 격려의 목적으로 베푼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선고는 검사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첫 사례이자 일선 최대 검찰청을 이끄는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핵심 고위간부인 검찰국장이 연루된 사건인 점에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돈봉투 만찬 파문에 휘말린 뒤 이 전 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나란히 사의를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법무부와 대검찰청에 감찰을 지시한 지 하루 만에 이 전 지검장은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면서 공직에서 물러나 감찰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하지만 1심에서 죄가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서, 후배 검사들에 대한 격려금과 식사 때문에 지검장이 사퇴했다는 뒷말이 나오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이번 무죄판결로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은 면직처분취소 청구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은 지난 6월 현행법 위반과 품위유지의무 위반의 이유로 면직되자 이에 불복해 법원에 소송을 냈다.

◇ 법 해석 놓고 여론 '활활'… "법 취지 무색" "음식물·금품 합산 타당"

이런 가운데 여론은 이번 판결과 관련한 청탁금지법의 해석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며 들끓고 있다. 

청탁금지법에 따라 스승의 날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감시의 표시로 '카네이션'도 달아주지 못하게 하면서 현금을 주고 받은 검찰 고위직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석연찮은'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아울러 청탁금지법은 공직자를 비롯해 언론인·사립학교 교직원 등 법안 대상자들이 1회 100만원(연간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할 경우,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도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애초에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도 금품 수수를 금지했던 법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1회 100만원 초과 금품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지만 이 전 지검장이 초과 금액에 '커트라인'인 100만원의 금품을 제공한데다, 검찰이 주장했던바와 같이 음식물과 금품을 합산해 109만5000원을 범죄 금액으로 봐야한다는 여론 역시 존재해 당분간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전 지검장을 기소했던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판결문을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