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공화국 대한민국 ‘오명’
자살 공화국 대한민국 ‘오명’
  • 오승언기자
  • 승인 2008.09.0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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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0만명 당 21.5명 OECD 평균에 2배
10년새 2배 급증…사회 양극화 심화가 주범

경기도에서 사업을 하던 B씨(45) 물품대금 마련을 위해 연이율 66%를 훨씬 초과하는 사채를 끌어 썼다.

빚이 쌓여만 가자 사채업자는 B씨에게 “길거리에서 밟아 죽이는 수가 있다"고 협박에 시달렸다.

그는 협박에 못이겨 어느날 자살까지 결심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지금은 공사장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B씨의 경우처럼 자살에 대한 충동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는 사회가 됐다.

최근 탤런트 안재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지며 자살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뿌리깊은 문제라는 것이 새삼 증명됐다.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등장한 자살은 이미 경제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에 올랐다.

이때문에 그동안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내밀한 아픔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공동의 위기의식이 만들어지고 있다.

◇수명은 선진국 수준, 자살률은 급증 보건복지가족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경제개발기구(OECD) 건강자료에 따르면 2006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79.1세로 OECD 평균 수명인 78.9세를 상회한다.

이는 2001년도에 비해 2.7세 늘어난 수치로 전반적인 건강상태가 선진국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급증하는 자살은 이런 건강지표들을 무색케 한다.

2006년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은 21.5명으로 OECD 평균인 11.2명보다 2배 가까이 높다.

OECD 가입국가 가운데서는 그리스가 2.9명으로 가장 자살률이 낮았고, 멕시코(4.4명), 이탈리아(5.5명) 영국(6명) 순이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치를 보인 나라는 헝가리(21명), 핀란드(18명) 정도였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10만명 당 24명이 자살을 해 한층 더 문제의 골이 깊어졌다.

전체 자살사망자수는 1만2174명으로 2006년의 1만688명에 비해 1359명(11.6%)이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하루 평균 3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통계청 자료를 살표보면 자살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2003년 처음으로 1만명을 넘긴 이후 2006년을 제외하고 매년 10% 안팎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손실을 연간 3조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지만 망자(亡者)가 주변에 남긴 상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남성, 노인, 동반자살 유독 많아 보건복지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응급실 손상환자 표본심층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1996년 28.6명에서 2006년 72.1명으로 약 2.5배가 급증했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65세 미만이 11.7명에서 16.8명으로 늘어난 것에 비해 두드러진 수치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자살하는 빈도도 높다.

2005년에 한정시켜보면 60∼64세 노인의 경우는 10만명당 48.0명, 65∼69세는 62.6명, 80∼85세는 무려 127.1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동반자살이 많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지적한다.

부모가 자식과 함께 목숨을 끊는다던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온라인 자살카페 등을 통해 함께 자살을 결행하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사이비종교집단의 광기에 이끌려 집단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나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양상의 원인에 대해 확언을 피한다.

다만 외국에 비해 유독 동반자살이 많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지적한다.

다만 유교적 전통하에서 양상된 ‘책임의식의 비약'이 이같은 비극을 초래한다고 추론하고 있다.

가령 자살을 마음먹은 젊은 부모가 자신이 죽으면 자식이 더이상 양육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혈육을 살해한다는 것이다.

노인들의 경우는 반대로 “내가 자녀들에게 짐이 될 것 같다"는 마음에서 자살을 한다는 것이다.

◇당장 처방보다는 심도있는 연구와 접근 필요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아직까지 자살은 개별적인 문제일 뿐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일단 자살에 대한 원인과 진단, 해결책을 뽑아낼만한 신뢰성 있는 자료가 드물다.

통계청이나 질병관리본부가 내놓는 자료는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는데다가 자살을 대외에 알리길 기피하는 우리사회의 의식 탓에 그나마 축소되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가령 부모에게 오락을 못하게 한다고 꾸지람을 들은 청소년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곧바로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당장의 처방보다는 심도깊은 연구와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언론의 피상적 접근도 문제다.

자살예방을 홍보하고 있는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자살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실업, 고령화 등 다년간의 축적된 데이터를 통한 접근이 있어야 한다"며 “언론이 입시과열, 가정파괴 등으로 그때그때마다 유행처럼 자살원인을 쓰고 있지만 이는 피상적 접근에 불과하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자살예방정책은 단기와 중장기 계획이 다 필요하다"면서 “상당수의 자살은 분명 예방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자살예방협회 김희주 사무국장은 단기적인 자살예방정책에 대해서는 1차적으로 자살수단을 차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관심만 가지면 자살하려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며 “대부분이 자살 직전에 ‘원인 사인'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농담으로 하는 얘긴지 진담인지, 반복해서 듣다보면 알아채게 된다.

국민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그런 교육을 받는다면 자살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