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입 동시 실시, 고교서열화 해소 모범답안 될까
고입 동시 실시, 고교서열화 해소 모범답안 될까
  • 전호정 기자
  • 승인 2017.11.0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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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외고·국제고 사실상 폐지수순… 학생 혼란은 불가피
"쏠림 해소·공정경쟁 가능" VS "강남 8학군·지역명문고 부활"
지난 7월 26일 오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특권학교폐지촛불시민행동 회원들이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7월 26일 오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특권학교폐지촛불시민행동 회원들이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의 신입생 우선선발권 폐지함에 따라 사실상 이 학교들은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학생 선발 시기가 내년부터 일반고와 동일하게 변경되면서 우수한 학생을 미리 선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 공약 이행의 첫번째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고교서열화의 완화를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학생들의 혼란과 함께 평준화 시절 '대입 명문고'로 꼽혔던 '강남 8학군'과 지방 일부 고교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교육부는 2일 그간 자사고 등이 일반고에 앞서 학생을 선발하면서 우수한 학생을 선점해 온 것을 '선발 특혜'로 보고 일반고와 고입전형 시기를 동일하게 설정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내년(2019학년도)부터 학생들은 자사고 등과 일반고 중 한 곳을 택해 지원하고 탈락하면 일반고를 다녀야 한다.

앞서 자사고 등은 우선선발권으로 성적우수자를 뽑은 뒤 교육과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활용해 입시기관처럼 운영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일부 학교는 입시 성적 덕에 인기가 높아지면서 외고보다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쏠림 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따라서 개정안이 적용되면 자사고·외고 위주의 고교서열화가 다소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교육부는 내다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합격이 불투명한 학생들만 지원을 꺼리겠지만, 미달로 인한 추가모집 등이 반복되면 우수 학생들이 자사고·외고·국제고로 몰리는 현상은 다소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이들 학교가 일반고와 고입을 동시에 치르게 되면 결국 일반고로 전환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지금처럼 우수한 학생을 독식할 수 없게 되면 '입시 명문고'라는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고 특목고의 정체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이유다.

정부도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에 힘을 싣고 있다. 교육부는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를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일반고 전환 희망학교에 대해서는 행정적·재정적 지원 방안도 마련하고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등 고교체제 개편 방안을 국가교육회의 안건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한 입시전문가는 "과거엔 자녀가 자사고·외고에서 펼쳐지는 경쟁에서 버텨낼 수 있을지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면, 요즘엔 지금 상황에서 자사고·외고에 진학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문의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자료=교육부)
(자료=교육부)

문제는 고교 입시를 치르게 될 중학생들의 혼란이 커지고 입시에서 '눈치작전'이 심화할 수 있어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매우 높은 상황이다.

자사고가 폐지되면 이과 성향의 학생들은 과학고나 영재학교로 몰려 결국 사교육 수요가 수학, 과학 등으로 옮겨가는 '풍선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평준화 시절 '대입 명문고'로 꼽혔던 '강남 8학군'과 지방 일부 고교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예상이 팽배하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좋지 않은 지역의 학생들은 선택권을 침해당했다고 느낄 수 있다"며 "명문 일반고의 부활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일부 일반고는 인기가 많아 경쟁률로만 따지면 자사고·외고보다 높다. 우수한 학생들이 비선호 원거리 학교에 배정된 뒤 전학 가는 현상이 심화한다면 일반고 안에서의 학교 서열화는 더 공고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고연합회장인 오세목 중동고 교장은 "학생·학부모에게 선택의 기회가 다양하게 주어지는 게 발전된 사회"라며 "특목고·자사고에 지원한 학생들에게 (일반고 배정 과정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은 다양성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방향성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