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백남기 농민 오늘 광주 5·18묘역에 영면
故 백남기 농민 오늘 광주 5·18묘역에 영면
  • 양창일 기자
  • 승인 2016.11.0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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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에서 유족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고인의 영정을 운구하고 있다.ⓒ박영훈 기자

작년 11월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은 뒤숨진 고(故) 백남기(69) 농민의 노제가 전날 서울에서 민주사회장(葬)으로 진행된데 이어 6일 오전 고향인 전남 보성과 광주 금남로에서 진행됐다.

백남기 전남투쟁본부는 이날 오전 백씨의 고향인 전남 보성 생가에서 추모식을 열고 보성역 광장에서 노제를 지냈다.

이어 광주광역시 금남로 5.18 민주광장에서 시민 등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 공권력에 의해 숨진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대규모 노제를 지낼 예정이다.

노제를 마친 뒤에는 광주 시내를 도는 운구행진을 벌인 뒤, 5.18 구묘역의 민족민주열사묘지에 고인을 안장할 계획이다.

백씨의 장례는 3일부터 진행된 가운데 지난 5일 오전 8시 발인 후 명동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열렸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한 미사에는 유족과 시민단체 관계자, 정치권 인사 등 800여명이 참석해 백씨의 마지막 길을 추모했다.

이어 오후 2시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백씨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영결식에는 유족과 시민들을 비롯해 문재인 전 대표,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야권 대선 주자와 야 3당 대표 등 2만여명(경찰 추산 1만1000여명)이 참석했다.

이후 오후 8시께 고향으로 온 백씨를 지역민들은 추모문화제 등으로 맞이했다.

1947년 보성에서 태어난 백씨는 중앙대 행정학과에 입학,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1980년 체포됐다가 이듬해 3·1절 특별사면되고서 보성으로 내려가 농업에 종사했다.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가톨릭농민회에서도 활동했다.

백씨는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대회 도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뒤 지난 9월25일 오후 1시58분 숨졌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고인이 물대포에 맞아 사망에 이른 것이 명백하다며 책임자 처벌과 사과를 요구했다. 검찰과 경찰은 명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시신 부검이 필요하다며 영장을 청구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족과 협의 등 조건부로 발부된 부검영장은 유족 측의 완강한 거부로 집행 시한인 이달 25일까지 집행되지 못했다. 검경이 결국 영장을 재청구하지 않기로 해 비로소 장례 절차가 시작됐다.

백씨의 딸 백도라지씨는 지난 4일 투쟁본부 SNS를 통해 "아버지의 장례를 모시는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이라고 해야겠다"며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청장을 비롯한 국가폭력의 책임자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이들은 살인미수죄가 아니라 살인죄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라고 비판했다.

도라지씨는 "이들을 처벌하고 정부의 책임 있는 사죄를 받아내는 것이 우리 가족들의 첫번째 싸움"이라고 밝혀 향후 계획을 시사했다.

[신아일보] 광주/양창일 기자 ciyan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