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전'·'박공주헌정시' 읽어보니… 닭공주와 무당 이야기
'공주전'·'박공주헌정시' 읽어보니… 닭공주와 무당 이야기
  • 전호정 기자
  • 승인 2016.11.0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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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혜가 결국 해내시어타… 당순실이 사년분탕질 이정도일준"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이 때아닌 고전문학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일 페이스북 등 온라인 상에서는 '공주전'과 '박공주헌정시(朴公主獻呈詩)'가 큰 인기를 받으며 공유되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글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고전문학과는 좀 다르다.

먼저 공주전이 처음 공개된 것은 지난달 30일 연세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다.

공주전은 고전 문체로 쓰였고 민담 형식을 취하고 있는 3000자가 넘는 장문의 글이다.

읽다보면 마치 옛 고전 문학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하는 이 소설은 연세대학교의 한 학생으로 쓴 것으로 추측된다.

공주전에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독재자 아버지 밑에서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닭씨 성의 공주 '그네겅듀'와 신분 세탁의 기회를 엿보던 '무당 최씨', 그리고 최씨의 딸이자 말 타는 기수가 되고자 하는 '정'이 등장한다.

이 글은 "옛날 헬-조선에 닭씨 성을 가진 공주가 살았는데 닭과 비슷한 지력을 가졌다"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글에 따르면 무당 최씨는 공주에게 "중전마마를 빙의하는 미천한 재주를 보여주겠다"며 접근해 신뢰를 얻고 조금씩 공주의 일상에 관여하며 영역을 넓혀간다.

최씨는 공주의 연설문을 빨간펜으로 고치는 것도 모자라 공주의 의복과 표정까지 관리하기에 이른다.

공주전은 후반부로 갈수록 '최순실 게이트'로 불린 최씨의 국정 개입 사태를 '수첩공주', '순실의 시대' 등의 용어를 써가며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글쓴이는 공주전 말미에 "이에 크게 느낀 바가 있어 병신년(丙申年) 모월 모일 모시에 이 글을 기록하였다"며 글을 쓰게 된 배경을 친절히 설명했다.

공주전에 이어 31일 고려대학교에서 운영하는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한시(漢詩)'의 형식을 빌린 5언 12구의 시가 등장한다.

이 시가 놀라운 점은 '근혜가결국 謹惠家潔國(가정을 사랑하고 국가를 단정히 함을 삼간다면)', '해내시어타 該奈侍於他(그 어찌 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오)'와 같이 한자의 독음과 해석이 너무도 정확하게 맞물려 현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 했다'를 연상케 하는 '이정도일준 利精刀一俊(그 중에 날카롭고 예리한 칼 하나가 두드러지니)', '예상모택다 預相謨擇嗲(미리 서로 모의하여 고개 숙여 아부한다)' 등의 표현 속에는 옛 선인들이 한시에 녹여냈던 '해학(諧謔·익살스럽고도 품위가 있는 말이나 행동)'까지 담겨 있다.

시의 후반부에서는 '무당순실이 無當淳實爾(순박하고 진실한 자는 아무도 당할 수 없으니)', '사년분탕질 赦撚分宕質(뒤틀린 본분과 방탕한 자질도 용서하며)'과 같이 독음으로 최순실씨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밖에도 최순실 국정농단을 풍자한 기발한 창작물들은 계속되고 있다.

한편 31일 최씨를 긴급체포한 검찰은 1일에도 그를 불러 조사했다. 재단 관련 의혹을 주로 수사하는 형사8부(한웅재 부장검사)에서 이틀째 조사가 이어졌다.

2일에는 또 다른 핵심인물로 꼽히는 안종범 전 수석도 소환된다. 롯데와 SK 외에 삼성 등 재단에 금전적 도움을 준 다른 대기업 관계자 조사도 이어질 전망이다.
 

[신아일보] 전호정 기자 jhj@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