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방재정책으로 안전한 삶 누리는 게 복지”
“효율적 방재정책으로 안전한 삶 누리는 게 복지”
  • 온케이웨더
  • 승인 2013.03.2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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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상만 한국방재학회 회장(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방재(防災)의 이치’를 깨달았다. 바람과 비를 피해 집을 지었고 한해에 대비해 우물을 팠다. 파도를 피해 만(灣)을 찾았으며, 지진이 나면 안전지대로 피할 줄 알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수천년을 살아왔다.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그의 저서 ‘문명의 역사’에서 “메소포타미아문명은 큰 재해 이후에도 방재시설을 방치하고 관리를 소홀히 해 결국 쇠퇴했다”고 언급했다. 역사적으로도 방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명의 발전과 함께 그 필요성이 강조돼 왔다. ‘방재’는 폭풍, 홍수, 지진, 화재 등의 재난·재해를 막는 것으로 그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재해의 다양화, 대형화 추세를 막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방재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방재 전문 학술단체인 한국방재학회가 만들어졌다. 지난달 21일 제7대 회장에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정상만(57) 교수가 선출됐다. 이달 21일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정 회장을 만나 우리나라 ‘방재’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우리나라 ‘복합 재해’ 대응능력 하루빨리 키워야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현대인들에겐 ‘안전한 삶’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됐다. 문명의 발전으로 과거와 동일한 규모의 자연재해가 발생해도 예방·대비 상태에 따라 그 피해 정도는 줄고 있다. 하지만 재난·재해는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는 점 때문에 항상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상만 한국방재학회 회장(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정 회장은 “안전이 곧 복지”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것 보다 안전한 삶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방재 정책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효율적인 방재 활동이 가능하도록 인프라도 구축해야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특히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재난·재해로 인한 1차 피해 뿐만 아니라 2차, 3차까지 대비할 수 있는 복합재난 대응력을 키울 때”라고 강조했다.
 
 
2011년 발생한 일본의 원전 사고는 지진으로 시작해 쓰나미-시설물 훼손-원전시설 파괴-농작물 피해 등 ‘복합재난’으로 퍼져나갔다. 그때의 사고로 현지인들은 물론이고 현재 우리 정부도 일본의 농산물 일부에 대한 수입 중단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정 회장은 “재난·재해로 인한 피해가 복잡화, 다양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단일 재난에 대해서는 대응력이 높지만 융합적인 재난에 대한 방재정책은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비를 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난·재해가 발생할 때 문제가 된다. 그래서 다가올 여름 태풍과 집중호우로 인한 물난리에 대비해 배수관 확대, 빗물저류시설 확보, 펌프시설의 증설, 도로나 인도의 투수성(빗물 흡수가 가능한) 포장 등에 미리 나서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뭄·폭염·폭설·황사 등 유형별 예·경보 시스템 확대해야”
 
우리나라의 경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과 소방방재청이 재난관리를 총괄하면서 예방·대비·대응·복구 체계를 갖추고 관련 법령을 운용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정 회장은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재난은 대형화, 복합화, 다양화 되어 가고 있는 데 그에 따른 대책 마련은 미국·일본에 비해 더디기만 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후변화를 고려한 방재기준·방재시설 정비가 시급하며 지역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예방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주로 홍수에 집중되어 있는 예·경보 시스템을 가뭄·폭염·폭설·강풍·지진·해일·황사 등 유형별 예·경보 시스템 구축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에 따르면 선진국일수록 ‘준비·피해경감’ 단계에 중점을 두지만 후진국은 ‘사후 복구’에 집중한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만큼 ‘복구’보다 미리 예방하는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
 
 
미국의 경우에는 1979년 효율적인 재해관리를 위해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설립했다. FEMA는 ‘피해경감’ ‘대비’ ‘대응 및 복구’ 단계의 권한을 행사하고 이에 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 회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재난안전관리 기능이 분산돼 ‘조직운영의 비효율성’이 초래되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현재 자연 재난 및 인적 재난은 소방방재청에서 담당하고 사회적 재난은 행정안전부에서 총괄토록 돼 있다. 그로 인해 소방방재청 재난상황실과 행정안전부 국가위기종합상황실에서 같은 내용의 재난에 대해 각각의 보고서가 만들어져 전파되고 있다. 이런 이중적 지휘체계는 동일 재난에 대한 신속한 대처를 지연시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정부가 재난 발생 시 개별 부처 중심으로 예방·복구에 치중한 나머지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비·대응책이 미흡했고, 물자지원 등의 관리시스템 부재로 운영의 어려움도 겪어왔다”고 지적했다.
 
 
한국방재학회, 재난·재해 대응 위해 2000년 설립…회원 2300명 활동
 
2000년 설립된 ‘한국방재학회’는 우리나라의 재난·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자연·인적·사회 재난의 전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학회다.
 
 
2300여명의 회원들은 관련 분야의 기술 발표 및 정책을 제안하고 연구 성과를 학술지에 게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난·안전 기준 및 법령 개정과 재도 개선에도 적극 참여한다.
 
 
학회는 매년 정기학술대회와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해 국내·외 재난·안전 논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방재학회논문집과 학회지를 격월간으로 발행하고 있다. 현재 학회의 논문은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학술지’로써 올해 초 국내 5634개의 학술지 중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선정한 ‘한국을 대표하는 우수학술지 66’에 선정됐다.
 
 
또 올해 초 공무원 직렬 중 ‘방재안전직렬’을 신설하는 실적도 거뒀다. 이와 관련, 학회는 두 차례 공청회를 개최했다.
 
 
그 동안 많은 업적을 쌓은 학회지만 정 회장이 학회 운영에 있어 아쉬운 점으로 꼽은 것이 있다. 학회 활동에 교수·학교·관련 기관 관계자 등 주로 학계에서만 참여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공무원과 엔지니어, 산업계의 학회 참석률이 높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은 학계와 공무원, 산업체 등과 간격을 줄여갈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지난 6일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주재 하에 ‘UN 물과 재해 특별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 한국방재학회를 대표해 정 회장이 참가했다.
 
 
이 회의는 각국 및 국제기구의 의사결정자들이 재해위험경감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실질적인 활동지원을 약속하는 자리였다. 또 재해 관리에 대한 각국의 협력 필요성을 공감하고 재난·재해에 미리 대비해 피해를 예방하자는 목표도 확인했다.
 
 
가장 큰 관심을 보인 나라는 일본. 일본은 나루히토 왕세자를 비롯해 50여명이 참석해 참석자(300명)의 6분의 1을 차지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한승수 전 총리를 비롯해 5명만 참가해 재난·재해와 방재에 대한 관심도가 현저히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재난·재해 위험성도 함께 커져
 
UN의 한 연구 결과를 보면 1850년대에는 도시인구와 시골인구의 비율은 각각 30%와 70% 정도였다. 이것이 2007년이 되면서 50:50이 됐고, 2050년에는 70:30으로 바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처럼 도시 인구집중은 현대사회의 커다란 특징에 속한다. 또 지하시설 과다 사용으로 빗물이 흡수되지 않아 재난·재해에 더 취약한 구조로 변모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위험성의 증가와 더불어 이 같은 사회구조 변화로 재해 취약성도 높아지고 있는 것.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지표면의 수분이 증발해 가뭄과 물 부족 현상이 초래되고, 폭염과 한파가 찾아오는 것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정 회장은 “재난안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별, 유형별, 맞춤형 기상예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안전한 영농 및 어업을 위한 기반을 정비해야 한다”며 “지역에 맞는 위험도 지수, 위험 항목, 위험 요인을 정의·관리하기 위한 ‘지역안전도’를 체계화하고 평가함으로써 재난에 대비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그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시간 방재정보를 활용해 재해 발생 징후를 사전에 탐지하고 각 지자체 및 피해지역 주민에게 신속하게 정보를 제공해 대응이 이뤄진다면 재산과 인명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주민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재난·재해의 피해 규모를 생각해 볼 때 국가와 함께 주민도 같이 호흡을 맞춰야 효과적인 방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단 방송·언론 등을 통해 확산되는 행동지침을 따라야 한다. 정부가 지정한 안전지대로 대피하고, 전기를 쓰지 말라면 쓰지 말아야 하고 통제된 고속도로 구간에는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중앙정부와 관련부처가 지역주민과 긴밀한 공조체제를 이뤄 가면 재난 예방 및 대응에 대한 역량도 강화될 것이라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다.
 
 
선진국에서는 재해 경고를 무시하면 벌금을 물리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재난 상황을 가정해 유사시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가족회의에서 각자의 역할과 행동요령을 사전에 설정해 숙지하는 등 방재 훈련과 대비 활동에 개인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 정상만 한국방재학회 회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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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주 온케이웨더 기자 parkseon@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