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 중대재해처벌법도 못 막은 '건설 사망 사고'
[송년특집] 중대재해처벌법도 못 막은 '건설 사망 사고'
  • 서종규 기자
  • 승인 2023.12.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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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책임자 징역형 조항에도 시행 첫해 200명 넘게 목숨 잃어
전문가 "안전 교육 강화·적정 공기 필요…무리한 작업 막아야"
50억원 미만 사업장 법 적용엔 "아직 이르다" 반대 목소리도
(사진=신아일보DB)

건설 현장 사망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사망 사고가 발생한 회사 경영책임자 등에 책임을 묻는 강력한 법적 장치가 마련됐지만 여전히 근로자들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정책적 오류일까? 개인 부주의일까? 현장 구조 자체의 한계일까? 신아일보는 건설산업연구원 보고서를 바탕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년간 건설 사고 현황을 돌아보고 사망 사고를 막기 위한 대안을 찾아봤다. <편집자 주>

작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첫해에만 200명 넘는 건설 현장 근로자가 작업 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전문가들은 건설 현장 중대재해를 막으려면 근로자 안전 교육을 강화하고 적정 공사 기간을 책정해 무리한 작업을 멈춰야 한다고 제언한다. 내년 1월 이후 50억원 미만 현장까지 중대재해처벌법을 확대 적용하는 계획에 대해선 위헌 논란 등으로 번진 견해차를 좁히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29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하 건산연)이 국토교통부의 CSI(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를 통해 건설업 사망사고를 분석한 결과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건설 현장에서 총 739명이 사망했다.

연도별로는 2020년에 250명이 사망했고 2021년에는 271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에는 218명의 건설 현장 사망자가 발생했다.

◇ 강력 처벌 수위에도 여전히 '떨어지고 깔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한 현장의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강력한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법안이다. 중대 산업재해는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같은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발생 △같은 유해 요인의 직업성 질병자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 등이다. 이 중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현장의 경영책임자와 사업주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해인 2022년 건설 현장 사망자는 전년 대비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매년 200여 명의 건설 근로자가 목숨을 잃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도 3분기까지 건설 현장에서 총 183명이 사망했다.

최근 3년간 건설 현장 사망 사고유형별로는 '떨어짐'이 372건으로 가장 많았고 '깔림'과 '물체에 맞음'이 각각 138명과 66명으로 뒤를 이었다.

2020~2022년 건설 현장 사망 사고별 원인. (자료=건산연)

◇ 최다 사고 원인 '단순 과실'…맞춤 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강력한 처벌 외에도 작업자의 안전 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안전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건산연에 따르면 2020~2023년 '작업자의 단순 과실'로 132명이 사망했다. 사고 원인 중 가장 많은 수치로 두 번째로 많은 사고 원인인 '부주의'(43건)보다 90여 건 많다.

손태홍 건산연 연구위원은 "중대재해처벌법은 특정 사고로 인해 빠르게 급조돼 만들어진 부분이 있다"며 "법체계나 구성, 규정, 정의 등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 시설물에서 유발되는 사고는 근로자의 부주의한 행동 등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며 "근로자의 부주의를 막기 위해 개인 근로자에 대한 안전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설계 당시부터 적정한 공사 기간을 책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우나 폭설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공사 기간 및 비용 연장 등을 반영해 무리한 공사를 막아야 한다는 견해다.

손태홍 연구위원은 "현장 시설물과 안전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적정한 공사 기간과 비용이 뒤따라야 한다"며 "공기 연장은 결국 비용 증가에 영향을 미쳐 무리한 작업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안전과 품질을 모두 잃는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건산연은 'CSI(건설공사안전관리종합정보망) 자료를 활용한 국내 건설업 사망사고 심층분석' 보고서를 통해 건설 현장 사고 사망자의 연령대가 대부분 50대 이상인 점을 고려해 개별 근로자에 대한 안전 교육과 함께 젊은 인력 유입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사고 객체 중 가시설물과 건설기계에 따른 사고 사망자 비중이 높은 만큼 해당 객체에 대한 안전 점검 대책을 구체화 및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초기 안전 점검 시 가시설물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거나 공사 수행 중에 정기적인 점검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경기도 부천시 한 건설 현장(*기사 특정 내용과 무관). (사진=신아일보DB)

◇ 내년부터 소규모 현장도 적용

전문가들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소규모 현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봤다. 2022년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될 당시 2024년 1월27일부터 50억원 미만 사업장에는 해당 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당정은 고금리 장기화로 소규모 현장을 운영하는 중소 건설사들의 어려움이 지속하는 점을 고려해 해당 법률을 2년간 유예하는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달 21일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개최한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어떻게 할 것인가?' 세미나에서는 소규모 현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을 유예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잇따랐다.

당시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예측 가능성과 이행 가능성이 부족하고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복되는 내용도 많아 실질적 안전에 많은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을 내년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건 많은 부담뿐만 아니라 소기업과 우리나라 전체의 안전에도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최진원 법무법인 유한 태평양 변호사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 및 책임 요건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이 이뤄지고 위헌 논란을 해소한 후 법 적용을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하는 게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seojk0523@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