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성균 하사, 73년 만에 가족 품으로
고 이성균 하사, 73년 만에 가족 품으로
  • 허인 기자
  • 승인 2023.09.2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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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비(碑)마저 파묻혔던 6·25전쟁 전사자
자유 수호 위해 전쟁 발발 전 국군 자진 입대
1950년 8월 '포항 전투'에서 전사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38선 이남으로 남하하여 입대 후 낙동강 전선에서 내려오는 북한군과 전투중 산화하신 6·25전쟁 전사자의 유해가 73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005년 경상북도 포항시 도음산 일대에서 발굴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을 국군 수도사단 소속 고(故) 이성균 하사(현 계급 상병)로 확인했다.

이번 신원확인은 병적자료 등을 바탕으로 유가족을 찾아가는 기동탐문을 통해 진행했다. 국유단 기동탐문관은 고인의 병적자료에서 본적지를 강원도 고성군으로 파악한 후 해당 지역의 제적등본과 비교해 지난해 9월 고인의 조카로 추정되는 이용기 님(69세)를 찾았다.

이후 이용기 님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발굴된 유해와 대조하여 정밀 분석한 끝에 고인과의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써 고인의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게 됐으며, 이는 유해발굴을 개시한 이후 217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사례이다. 고인의 유해는 지역주민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유해발굴 조사팀의 끈기 있는 증언 청취와 탐문 활동을 통해 수습했다.

6·25 전쟁 당시 부역으로 동원됐던 지역주민들이 ‘흩어져 있던 전사자 유해를 도음산 정상 부근에 매장했다’는 증언을 토대로 2005년 3월 전문 발굴 병력이 유해발굴에 나선 결과, 좁은 공간에 겹겹이 쌓여 있던 400여 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이중 현재까지 고인을 포함하여 총 11분의 신원을 확인했다.

고(故) 이성균 하사는 국군 수도사단 소속으로, ‘포항 전투’(1950. 8. 18. ~ 9. 22.)에 참전해 북한군 남하를 저지하다 1950년 8월 22일 꽃다운 나이로 전사했다. 고인은 1929년 5월, 강원도 고성군에서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유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38선 이북에서 거주중이던 고인은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 발발 전 고향에서 떠나 강원 원주로 이동하여 1948년 12월에 국군 8연대로 자진 입대했다.

이후 고인은 국군 수도사단으로 배치되어 ‘포항 전투’에 참전하여 북한군 남하를 저지하다 안타깝게도 21세의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

포항 전투는 국군의 동부전선을 돌파하여 부산으로 조기에 진출하려던 북한군을 국군이 포항 도음산 일대에서 저지함으로써 낙동강 동부지역 작전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한 전투이다.

확인된 전사자의 신원을 유족에게 알리는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20일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유가족의 자택(전사자 생가)에서 열렸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되었다는 소식에 형수 김옥매씨(92세)는 “전사 확인서 받았을 때 당시 위령의 의미에서 선산에 비석을 만들었는데 ‘총각이 무슨 비를 세우느냐’라는 항의를 받게 되어 땅에 비석을 파묻었다. 이제라도 땅에 파묻은 비석을 찾아서 번듯하게 세워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카 이용기씨(69세)는 “시료 채취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삼촌을 찾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삼촌을 찾기 위해 노력해준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신아일보] 허인 기자

 

 

 

hurin020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