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술잔①] "이 정도면 괜찮아"…여전한 우리 곁 위험
[질주하는 술잔①] "이 정도면 괜찮아"…여전한 우리 곁 위험
  • 남정호 기자
  • 승인 2023.05.14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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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하루평균 음주운전 사고 41건…사망자, 다시 증가세
'인지 왜곡 반복·통제감 착각·음주에 관대한 인식' 등 영향
(사진=신아일보DB)
(사진=신아일보DB)

음주와 운전. 멀찌감치 거리를 둬야 할 이 두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못한다. 사망사고를 일으킨 음주운전자에게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게 법이 강화된 지도 5년이 가깝지만 개선 효과는 미미하다. 끊이지 않는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이 계속 빈번한 이유는 뭘까? 잠재적 살인 행위를 멈출 방법은 정말 없을까? 사회 인식과 제도, 기술적 측면을 모두 펼쳐 놓고 문제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지난해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이후 음주운전 문제가 커지고 있다. 음주운전 사고와 사망자 수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최근에는 대낮 음주운전 사고 사망자가 잇따라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술을 마시고도 '조심해서 운전하면 괜찮다'는 착각과 능력 밖 상황에서도 '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 음주운전을 불러온다고 지적한다. 음주 자체에 여전히 관대한 사회 인식도 문제 해결을 막는 거대한 장벽이다.

14일 경찰청과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 사고는 1만5059건 발생했다. 이는 전년 1만4984건보다 1.1% 많 수준으로 매일 41.3건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작년 음주운전 사고 사망자는 214명으로 1년 전 206명보다 3.9% 많다. 하루 평균 0.59명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음주운전 사고 건수는 2016년 1만9769건을 기록해 2만 건 밑으로 떨어진 이후 2019년 1만5708건까지 감소했다가 2020년 다시 1만7247건으로 늘었고 코로나19 기간인 2021년 다시 줄어든 바 있다. 사망자 수는 2012년 815명을 기점으로 2021년까지 줄곧 하락세였다.

최근에도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지난 4일 경기도 광주시에서는 역주행하던 음주운전자와 마주 오던 택시 기사가 추돌사고로 사망했고 1일 전북 완주군에서도 대낮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40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8일 대전시 서구에서는 대낮에 스쿨존을 걷던 9세 여아가 인도로 돌진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을 거두기도 했다.

2018~2022년 연도별 음주운전 단속 건수(단위:건). (자료=경찰청)
2018~2022년 연도별 음주운전 단속 건수(단위:건). (자료=경찰청)

음주로 인한 운전자의 운동능력 저하와 이로 인한 위험성은 이미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다. 2012년 도로교통공단 류준범·신용균·이원영 연구원 등이 낸 논문 '알코올이 정신운동 및 운전행태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음주운전자들의 감속 페달 작동 빈도는 음주 전과 비교해 33%가량 감소했다. 연구진은 음주운전자는 돌발 상황을 감속 페달 조작 대신 운전대 조작으로 회피하거나 위험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음주운전자들은 음주 전과 비교해 속도감이 저하돼 더 빠른 속도로 운전하고 급출발 또는 급가속하는 운전행태를 보였고 차선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등 주행 안전성도 현저히 떨어졌다.

이 같은 운동능력 저하로 인해 현행법상 면허 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2% 이상 만취 상태 운전자가 중상 이상 결과를 초래하는 교통사고를 일으킬 확률은 일반 운전자보다 78배 높다는 2013년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연구자들은 음주 후 운전대를 잡는 사람들이 주의해서 운전하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인지 왜곡에 빠진다고 봤다. 2009년 박선영 한국교통안전공단 박사의 '음주운전과 성격과의 관계에서 인지 요인의 매개효과 검증' 논문에 따르면 음주운전자들은 음주운전 상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과신하는 경향이 높았다. 사고를 내는 사람은 운전이 미숙하거나 신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박선영 박사는 이런 착각이 음주 정도에 따른 인지 왜곡 현상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고착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음주 단속에 걸리지 않거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결과를 반복하면서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통제감 착각' 현상이 굳어진다는 설명이다.

음주에 관대한 사회문화적 요인이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 부족에 일조한다는 진단도 있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매번 지적되는 것이지만 사회문화적으로 음주에 관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코로나 팬데믹도 풀렸으니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끌어올릴 정책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south@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