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우의 여의도노트] '골든타임' 놓친 ‘전세사기 피해 구제
[진현우의 여의도노트] '골든타임' 놓친 ‘전세사기 피해 구제
  • 진현우 기자
  • 승인 2023.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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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지정대상 요건 4개로 줄였지만.....국토위 법안 심사 난항
미추홀구 ‘빌라왕’ 피해금액, 2000억원 추산...눈덩이처럼 불어나
"피해자 걸러내겠다는 법" 피해 유형 맞춤형 지원책 요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소위가 5월 임시국회 시작과 함께 '전세사기 특별법'을 심사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소위가 5월 임시국회 시작과 함께 '전세사기 특별법'을 심사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 대책 특별법’이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조건’과 ‘보증금 반환 채권’ 국가 매입을 놓고 여야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은 더욱 더 커져가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가 가장 심각했던 인천 미추홀구 ‘빌라왕’ 사태 피해금액이 2000억원에 이른다는 미추홀구청의 자료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에서 다루고 있는 전세사기 특별법은 총 3가지다. 정부⃖·여당에서 내놓은 ‘전세 사기 피해지원 특별법’과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이 발의한 '주택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와 주거안정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발의한 '임대보증금 미반환 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 등 세 건의 제정안이다.

이들 법안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전세 사기 피해 범위를 어디까지 보장하는지와 보증금 반환 채권의 국가 매입 여부다. 

■국토부, ‘조건’ 줄인 수정안 제시했지만... 그래도 피해 증명, 모호하고 복잡하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난달 27일 정부안을 제출하면서 이른바 ‘6개 조건’에 부합하는 피해자들을 상대로만 전세사기 피해로 인정하기로 했다. 해당 조건에는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주택에 대한 경ㆍ공매 진행 △면적ㆍ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주택(세부요건의 경우 하위법령에 위임)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 등이 있다.

발의 직후부터 야당뿐만 아니라 전세사기 피해자들로부터 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복잡하단 비판이 쏟아졌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골라서 받겠단 것 아니냐’는 회의 섞인 조롱이 잇따랐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조건을 4가지로 줄인 수정안을 지난 1일 제시했다. 수정안에 명시된 조건은 △대항력·확정일자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해도 임차권등기를 마친 경우 △임대인의 파산 및 회생절차, 경·공매 절차 개시로 다수의 임차인에게 피해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 △임차인의 임대차보증금이 3억원 이하인 경우(단, 시⃐·도별 여건을 고려해 전세사기피해지원위 조정에 따라 최대 4억5000만원까지 인정 가능) △수사 개시, 임대인 등의 기망 또는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없는 자에게 임차주택 소유권을 양도하는 경우 등이다. 이 밖에도 기존 ‘85㎡ 이하’라고 규정한 피해주택의 면적 기준을 삭제했다.

국토부는 수정안에 나와 있는 조건을 적용하면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 대부분이 특별법 대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줄인 조건마저 너무 복잡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김주호 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금 정부에서 전체적인 전세사기 통계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질타했다. 

김 팀장은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피해가 ‘기망이 있는 경우’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에서 제시한 기준들로 전세사기 피해자를 증명하라고 하는 것은 ‘피해자를 걸러받겠다’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도 “(수정안에 나와있는 조건은) 6개를 합쳐서 4개로 만든 거다. 내용은 똑같다”며 정부가 제시한 수정안도 똑같이 복잡하다고 주장했다.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3일 오후 서울 은평구청에 마련된 전세 피해 상담센터에서 한 민원인이 대기하고 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지난 3일 오후 서울 은평구청에 마련된 전세 피해 상담센터에서 한 민원인이 대기하고 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국가가 나서는 ‘보증금 반환 채권 매입’... 여야 평행선 달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국가 소유 채권 매입기관이 먼저 보증금 반환 채권을 사들이는 문제를 두고도 여야는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적정 수준의 전세보증금 반환채권 선매입이 활성화된다면 대출 지원 사각지대 문제, 경매 지연이나 정부 매입임대 우선 매입권 행사에 따르는 복잡하고 어려운 법적인 문제들도 상당 부분 완화되고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여당은 다른 범죄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와 국가 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단 이유로 이 방안에 반대하고 있다. 국토교통위 여당 간사인 김정재 의원은 “사인 간 계약 문제에 국가가 직접 뛰어들어서 모든 손해를 본 케이스를 일정 정도 다 보상해 준다는 부분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야당은 '선 지원 후 구상권 청구'를 특별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민주당 전세사기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맹성규 의원은 “정부·여당 안은 현실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보증금 반환 채권 매입을 포함해 피해자들의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야당이 제시하는 방안이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세금으로 보증금을 대신 주라고 하는 것이란 (여당의) 주장은 굉장한 왜곡"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세사기 사건은 정부의 정책 실패와 직무유기에 상당하게 기반을 둔 사회적 재난이라고 보기 때문에 특별법도 필요한 것이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피켓을 들고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피켓을 들고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피해 유형 다양한 전세사기... “피해자 맞춤형 지원 대책이 선행돼야”

전세사기 피해자 측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얼마나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을지, 그리고 과연 지원 대상이 될 수 있을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사기 피해대책위는 피해자들을 빨리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어 처리하는 것 또한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주호 팀장은 “제4, 제5의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빠른 것도 중요하지만 대다수의 피해자들이 이 특별법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특별법을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세사기 피해 유형이 워낙 다양해서 피해자 본인이 상황에 맞춰서 지원책을 선택을 할 수 있게 해도록 입법 과정에서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hwjin@shinailbo.co.kr